동네를 빙빙 돌아다니곤 했었다. 아이가 잘 걷지 못하던 어린 시절,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목적지도 딱히 없으면서 동네를 돌아다녔다. 살 것도 없으면서 마트를 걷기도 하고 찻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가끔은 버스 정류장에 멍하니 앉아 유모차를 세워두기도 하고. 그렇게 외출을 하고 오면 하루가 빨리 끝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천천히 천천히 동네를 돌아다녔었다.
앞쪽에서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와 그것을 밀고 있는 중년의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부터 그들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지만 모른 체 했다. 아이를 낳은 후부터일까. 중년과 노년을 보내는 모녀의 모습을 보면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왠지 눈가가 시큰해져 일부러 고개를 돌린 적도 많았다. 길에서 청승 떠는 애 엄마로 보일까 봐 그날 역시 괜히 딴청을 부리며 그들을 스쳐 지나가려 했었다.
"아이고, 저 봐라. 어리니까 저렇게 편안하게 누워서 지내고. 참 좋겠다."
휠체어에 탄 할머니가 내 아이를 보며 말을 했다. 나는 당황했다. 서둘러 스쳐 지나가려다 뭐라고 해야하지 망설이고 있는데, 휠체어를 밀던 여자가 나 대신 말을 했다.
"엄마, 엄마도 지금 편~안하게 누워서 가고 있거든요. 미는 사람은 죽을 맛이구만."
음,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며 주춤거렸다. 딱히 나에게 답을 원한 건 아니었지만, 어떤 '센스 터지는' 말로 그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었다. 할 말을 고민하는 내 곁을 그들이 스쳐 지나갔다.
등 뒤로 목소리가 들렸다.
"너 어렸을 때는 나도 저렇게 밀고 다녔거든."
"그때는 나도 저 만했을 거 아니야. 쪼만하고 가벼웠겠지."
쪼만하고 가벼운 아이가 탄 유모차를 밀던 나는, 고개를 돌려 묵직한 휠체어를 미는 중년 여성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노년의 어머니를 보필하는 중년의 딸, 그들 사이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듣고 싶었다. 삶의 구비구비를 지나 휠체어에 앉기까지 할머니에겐 어떤 삶이 있었을까. 저 딸에게는 자녀가 있을까. 그들을 키워내며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 나는 모르는 이야기들. 겪지 못할 이야기들. 그래서 궁금했지만, 그저 상상만 하며 가던 길을 걸었다. 어머니가 탄 묵직한 휠체어를 밀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가끔, 상상해본다.
어머니가 살아계시면 어떨까. 47살 그때에 암투병을 마치고 '무사히' 살아가셨다면 내 어머니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본다. 솔직히 말해 매일이 싸움이지 않을까. 어머니의 잔소리 폭격과 알아서 하겠다는 딸의 실랑이는 아마도 20여 년 동안 이어지고 있을 것 같다. "아, 그만 좀 먹어. 살찐다" 하다가 "얼굴이 왜 이래. 뭐 좀 해줄까"하다가, 어머니는 예전에도 그랬듯 하루에도 몇 번씩 말을 바꾸겠지. 그러면 나는 "아, 그만 먹으라며!" 짜증내다가 또 못 이기는 척 밥상에 앉아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퍼 먹고 있지 않을까. 언제 싸웠냐는 듯 맛있게. 그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또 어느 순간엔 늘 사이가 안 좋은 것처럼 으르렁 거리다가. 친구들이 제 어머니와 그렇게 지내는 것처럼 나도 그러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사실, 잘 모르겠다. 상상을 하기에도 너무 오래 지나버려 어떤 모습일지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나이 든 어머니의 얼굴은 어떨까.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상상해보면 비슷할까. 틀니를 꼈을까? 이를 다 드러내고 웃던 그 모습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할까? 음식은 여전히 잘 하실까? 외할머니처럼 구부정하게 움직이게 되셨을까? 내 아이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으셨을까, 내 아이를 뭐라고 불러주실까? 이마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일시정지 상태로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어머니는 일시정지. 나의 시간만 꾸준히 흘렀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어떨까. 사실 아버지를 떠올리면 오랜 병원생활만 기억이 난다. 하나밖에 없는 손자의 이름을 늘 헛갈려할 만큼 서서히 시들어 가던 아버지. 틀니를 뺀 모습이 어린 시절 보았던 할아버지와 비슷해 그 이야기를 직접 해 드리곤 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으시며 '강한' 부정을 하시곤 했는데. 환자복을 입기 이전의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더라. 만약 모든 병치레를 훌훌 털고 일어나 지금 살아계신다면 어떠셨을까.
문병을 가던 만큼 아버지 집을 자주 가리라 상상해본다. 주말 오후 느즈막히 아버지집을 찾아가 "오늘은 뭘 먹을까요" 고민하며 밥을 시키고 "여긴 별로다"하며 투정부리고. 함께 TV나 보다가 트로트 프로그램이 나오면 노래 부르시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아이와 함께 아버지의 노래를 따라부르기도 하고. "진작 이렇게 지냈으면 참 좋았을텐데" 후회도 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이렇게 살자" 다짐도 하면서 그렇게 지냈을 것 같다.
가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립습니다', '보고 싶어요' 이 말만 아련하게 뱉을 수 있으니까. '그리움'은 현실감이 없는 단어다. 흘러간 옛날의 어떤 순간, 이미 과거로 박제되어버린 모습을 떠올리면서 쓸 수 있는 말. 처절하고 눈물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아, 그립다" 그저 예쁘게 뱉기만 하면 되는 말. 그런 예쁜 그리움만 안고 있으면 되는 지금이 차라리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어머니가 지금 나를 보면 뭐라고 하실까. 남편과 이혼소송을 하며 아이 하나 붙잡고 사는 나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이렇게 살려고 잘난 척했냐 나무라실까, 아니면 아무 말 없이 그냥 안아주실까. 현실이 벅차게 무거울 때마다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했지만, 동시에 이런 꼴 안 보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내 삶이야 내가 감당하면 되는 것이지만, 내 일에 나보다 더 속상해 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너무 아플 것 같았다. 따뜻한 품을 그리워하는 것은 내 욕심일 뿐, 그리움만 아련히 품고 사는 지금이 낫다 생각했다. 다행이다. 이런 꼴 안 보일 수 있어서. 어머니 기억 속의 나는 여전히 고등학생 일테고, 아버지 기억 속의 나는 여전히 행복한 가정을 꾸려 살고 있겠지. 그 다음 이야기들은 나의 몫. 숨길 수 있어서 차라리 다행인 것도 같다.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은,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니 인생이나 챙겨라, 우리는 갈란다 하는 느낌으로 너무 급하게들 떠나셨다. 니가 할 효도는 기대도 안 된다 하며 쌩 하니 가버리신 부모님. 지난 시간들 반성도 하고, 후회를 발판 삼아 효도 흉내라도 내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옷도 사 드리고, 내 손으로 밥 한 끼 지어드리고, 맛집이라는 유명한 식당도 가보고. 남들이 좋다는 거 한 번쯤은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다. 그런 시간들이 나에게도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도 안다. 그립네, 보고 싶네 하고 있는 지금이 더 절절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은 왜곡되어 저장되고, 복잡다단했던 감정 역시 다 흐려져 아련한 그리움만 남는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정말 살아계셨다면, 그랬다면, 이 소중함을 몰랐겠지. 그리고 또 똑같은 잘못을 반복했겠지. 결국, 다 지난 후에야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리움을 붙잡고 후회 할 수밖에 없는 관계. '더 잘할 걸' 하고 돌아보게 되는 관계. 그것이 부모-자식의 인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