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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Dec 04. 2020

어머니를 위로해 드릴 수 있었다면

어머니가 암 선고를 받았다. 당시 나는 17, 어머니는 47세.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나는 '학교 가기 싫어'를 외치며 학교에 다녔고, 아버지는 술을 마시다 안 마시다 직장을 다니다 안 다니다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요양보호사였다. '오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좋아하던 어머니는 요양보호사가 되는 과정에서 건강검진을 받았고, 그 검진에서 '뭔가 있다'며 정밀검사를 받았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일상적인 삶에 갑자기 출현하는 뭔가를 걱정하기엔, 상상력이 부족했다.


검사 결과를 받은 날. 병원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꽤나 덤덤했다. 하지만 무언가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피한다는 느낌? 방으로 따라가 "병원에선 뭐래?" 물었다. "몸에 안 좋은 게 생겼대"라고 말하는 어머니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을 뿐, 딱히 이상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쩌면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단어를 고르지 않았을까. 본인이 받은 충격을 딸에게 전하고 싶지 않으셨을 것 같다. 내 기억 속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대로 나를 피해 욕실로 들어가려는 어머니를 붙잡았다.

"안 좋은 거? 뭐?"

욕실 손잡이를 잡은 채, 내게서 고개를 돌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암이래. 유방암."

암에 대해 1도 몰랐던 나는 검사결과를 부정했다.

"에이, 말도 안돼. 다른 병원 가면 달라지는 거 아니야? 오진 아니야?"

"크기가 좀 커서 빨리 수술해야 한다더라"는 이야기를 끝으로 어머니는 욕실로 들어가셨다.

어머니를 붙잡고 뭔가 더 묻고 싶었지만, 뭘 물어야 할 지도 몰랐다. 뭐가 크기가 크다는 말인데? 수술하면 해결되는거야? 해결 안 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유방암? 그거 왜 생기는 건데? 등등 떠오르는 건 많았지만 무엇을 물어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암'이라는 단어를 갑자기 맞닥뜨린 17살의 나는 현실감각이 없었다. 어머니와 병, 어머니와 죽음, 이런 연결고리를 떠올려 본 적조차 없었기에 잘 해결될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큰 병'에 걸린다는 건,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그날 밤, 잠을 자다 문득 눈을 떴다.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암이라는 걸 알고도 쿨쿨 잘 수 있었던 걸 보면 역시나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눈을 떴을 때는 새벽 2시쯤. 처음엔 거실의 TV 소리라고 생각했다. TV를 켜두고 주무시나보다, 나가서 꺼야지 생각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뭘 보길래 저런 소리가 나지, 라고도 생각했다. 방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는 순간, 내가 들은 것이 TV 소리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울부짖음.. 비명..?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그 소리는 약해졌다 다시 세지곤 했다. 방문에 귀를 바짝 붙이고 소리에 집중했다. 그리곤 깨달았다. 너무나 낯선 목소리여서 못 알아 들었을 뿐, 그것은 어머니가 내는 소리였다.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큰 소리로.

 

"내가-, 내가- "

 

그것이 내가 알아들은 유일한 단어였다. 중얼중얼 다른 소리들이 들리긴 했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사람이 내는 것이라 믿기 어려운 그런 소리를 내며 내 어머니가 울부짖고 있었다. 하루 종일 참았을 울음. 담담한 듯 하루를 보내고, 밤이 깊어지고 나서야 울음을 터뜨린 어머니.

나는 고민했다. '나가볼까', '아니야, 저렇게 우는 모습 나한테는 안 보이고 싶을 것 같은데.'


갈등하다 방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문을 열고 마주할 어머니의 모습이 두려웠던 것도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 들어보는 낯선 소리를 내며 우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며, 나도 울었다. 소리를 죽여 훌쩍댔다. 암이구나. TV에 나오던,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그 암이 엄마한테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상황이 안 좋구나, 하는 느낌도 들었다.


어머니의 울음은, 한참이나 계속됐다. 나는 그 긴 시간 계속 갈등만 하고 있었다. 나가볼까. 혼자 있고 싶을까. 저런 모습 내가 모르길 바라려나. 일어났다 앉았다 망설이기만 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서서히 어머니의 울음이 잦아 들었다. 밖은 조용해졌고, 나는 문 앞에 쪼그려 앉은 채로 아침을 맞았다. 조용히 문을 열어봤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어머니가 거실에 앉아있었다. 


어머니가 "잘 잤어?"하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인사하길래, 나도 그저 "응"하고 대답하며 욕실로 향했다.

어머니도 나도 최선을 다해 열연을 펼치는 중이었다. 두 여주인공은, 잘자고 일어나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을 맞은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토끼처럼 빨간 눈을 하고. 이전과 모든 것이 달라진 아침을 맞았으면서도.




그날 밤, 불현듯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 기억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 차마 물어보지 못했고, 어머니의 투병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었다. 이제야 꺼내어 놓는 너무 늦은 고백.


14~15살쯤일 거라 생각되는 때에 방에 앉아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나. 

그 때 어머니는 "근데.. "하며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요즘 가슴에 이상한 멍울같은 게 만져지는데, 한 번 만져 볼래?"

어머니는 분명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우, 엄마 가슴을 내가 왜 만져. 병원 가 봐"하며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방문 앞에서 훌쩍이던 17살의 그 밤, 머릿 속 어딘가에 숨겨뒀다 꺼낸 듯 2~3년 전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이런 일이 있었나 싶을 만큼 완전히 잊고 지냈던 것이었다. 어머니의 그 조심스런 제안을 거절하는 내 모습. 지금도 이 기억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상인지 알 수가 없다. 환상이라 믿고 싶지만, 아마도 사실일 거라 생각되는 선명한 기억. 한창 사춘기였기 때문일까. 무슨 변명을 붙이면 그 날의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니, 무슨 이유가 있었다 한들 용서하기 어려웠다. 17살의 나는, 몇 년 전의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대화 이후 2~3년이 지났고, 어머니의 삶은 계속 피폐했고, 어머니는 그동안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기억을 머릿 속에서 완전히 지운 채 살았다. 당시의 내가 정신이 온전히 박혀, 누구에게라도 그 얘기를 했었다면, 병원에 가보자고 엄마를 이끌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17살의 나는, 14~15살 무렵의 나를 자책하는데 긴밤을 쏟았다. 좀 더 나이가 들면서는, 14~15살의 나뿐만 아니라 17살 그밤의 나까지 미워하느라 또 오랜 시간을 쏟았다. 귀한 시간들을 그저 흘려보내기만 한 스스로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 밤 왜 엄마를 안아드리지도 못했을까"하는 후회는 정말로 오랜시간 마음에 남았다. 깊은 밤 홀로 울부짖으며 두려움과 막막함에 휩싸여있던 엄마를 꼬옥 껴안아 줄 용기조차 없었던 나. 괜찮을 거라고, 같이 이겨내보자고, 너무 무서워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 순간 손을 뻗지 못했다. 밤새 울던 어머니는 몇 개월을 못 버티고 내 곁을 떠났다. 함께 해보자 손을 잡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러질 못했을까. 왜 어머니를 혼자 뒀을까. 


후회는 쌓여 갔지만,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더이상 '앞으로'를 꿈꿀 수 없기에 더 미련이 남는다. 내가 좀 더 착한 딸이었다면 어땠을까. 엄마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그날 밤만이라도 다가갔으면 어땠을까. '만약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수많은 가정법 문장들이 삶 속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돌아보고 또 돌아봐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되는 시간들. 시간은 흐르고 흘렀지만, 지금도 가끔씩 수많은 가정법 문장들이 나를 파고든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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