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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Dec 01. 2020

엄마도 피곤하고 지치고 힘든 거였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비가 왔다. 퍼붓는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냥 맞고 걷기에는 부담스러운 정도. 학교 앞에는 아이를 데리러 나온 어머니들이 빼곡했다. 그 사이에서 '엄마도 와 있겠지'하며 두리번 거렸다. 하나 둘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어머니의 우산을 찾아 그 밑으로 들어갔고, 종종 걸음으로 사라졌다. 우산 속이 참 따뜻해 보였다. 




처음에는 '곧 오겠지' 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학교 입구에 남은 아이는 한 둘뿐. 선택해야 했다. 계속 기다리거나 비를 맞고 달리거나. 결국 비를 맞고 달리기를 선택했고, 화가 났다. 

'왜 안 온 거지?'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며 빗속을 달렸다. 달리다 힘이 빠지면 길가 가게 차양 밑으로 들어가 잠시 쉬었고, 숨을 고르고, 다시 달리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계속 달리다보니, 이런 일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면 '당연히' 어머니가 와 있겠지 생각했던 그날들. 


한참을 달리다 문득, '엄마가 집에 없으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싫어서 날 놔두고 사라진 거면 어떡하지?'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형편, 술에 취해 혼자 중얼중얼 헛소리를 하다가 온가족을 깨우다가 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도망갈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빗속을 달리는 내내 심장이 요동쳤다. 

'엄마가 나만 두고 가 버렸으면 어떡하지, 그럼 나는 누구랑 살지, 어떡하지..' 


집에 도착해 벌컥 문을 열자 현관에 있는 어머니 신발이 보였다. 안심했다. 숨을 고르며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옷과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확 하고 화가 치솟았다. 치솟은 화 그대로 확 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어머니가 방에서 나왔다.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봤다. 어머니의 빠알간 눈가를. 어머니의 눈에도, 잔뜩 빗물이 고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왜 데리러 안 왔어? 비 다 맞았잖아!"


어머니가 나를 빤히 쳐다 보셨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 치고... 몇 분 혹은 몇 초가 흘렀을까. 어머니가 낯선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아는 어머니는, 저런 눈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 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어, 무엇에 홀린 듯 어머니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눈을 돌린 건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고개를 돌리며 말씀하셨다. 

"미안, 비 오는 줄 몰랐어."

안에서 수건을 가지고 나와 머리카락을 털어주는 어머니는 어느새 내가 아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일까. 또 한껏 짜증을 부렸다. 

"다른 애들은 다 엄마 왔단 말이야. 올 줄 알고 한참 기다렸잖아!"

"....."

"집에 있으면서 왜 안 왔어!" 

"...... 추웠겠다."



어머니는 끝끝내 '왜' 안 왔는지를 말해주지 않았고,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흐릿한 기억들 사이에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던 그 몇 초가 남아있다. 그 눈. 확실한 것은 어머니는 그날 혼자 울고 계셨고, 나는 어머니가 울었음을 눈치채고도 그것을 모른 체 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저 한껏 짜증을 부렸다. 눈이 빨개질 만큼 우시던 어머니는, 꽥꽥 짜증을 내는 딸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이를 키워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엄마도 피곤하고, 엄마도 지치고, 엄마도 힘들 때가 있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의 나는 몰랐다. 엄마니까 참아야 하고, 엄마니까 해줘야 하고, 엄마니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해 주는 것은, 무엇이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감사함을 크게 느끼지도 못했다. 

돌아가신 분을 소환하긴 죄송하지만, 이건 다 어머니가 나를 잘못 키운 탓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모든 것을 주시길래,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조차 갖지 못했다. 갖고 싶은 것을 못 사줘서, 먹고 싶은 것을 못 사줘서, 마음껏 누릴 만큼 형편이 좋지 못해서, 다 미안하다고 했던 어머니. 사과를 받으며 자란 나는, 당연히 가져야 할 것을 어머니 때문에 못 가진 듯 굴며 철없이 자랐다. 당연한 듯 요구했고, 당연한 듯 응석을 부렸다. 다 어머니 탓이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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