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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Dec 09. 2020

아버지와 카레, 아이와 카레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수년 간을 요양병원에서 지냈다. 입원 중인 어느 날 구토 증상을 보였고,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담낭염이라는 새로운 병명을 알려줬다. 개복수술을 해야 한다는데 그마저도 어려운 몸 상태라 호스를 끼고 여생을 살다 가셨다. 다시 구토를 할 경우 호흡곤란이 올 수 있다며 요양병원 의사는 죽을 권했다. 말갛고 허연 죽.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아버지는 거의 2년 여 간을 말갛고 허연 죽만 드시다 가셨다. 


식사시간에 맞춰 병원을 찾았다가 진짜 맛없어 죽겠다는 얼굴로 죽을 드시는 아버지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다진 음식이라도 좀 드시게 하면 안되겠냐는 가족들의 요청을 요양병원에서는 거절했다. 그러다 악화가 되면 너무 위험하다는 소견. 어쨌든 죽을 드시는 아버지는 괴로워 보였고 "뭐 먹고 싶은 건 없어요?"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 

한참을 생각하시던 아버지는 "카레"라고 말씀하셨다. 

"뭐? 카레?" 정말로 의외였다. 

"카레를 좋아했었어요?"

말씀하시기 귀찮다는 듯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카레야?"

의외로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셨다. 

"그럼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뭐예요?"

묵묵부답. 그리곤 TV의 세계로 빠지셨고 거기서 대화는 끝이 났다. 

"그럼 다음에 올 때 카레 해서 올게요. 그건 나도 할 수 있어."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던가, 그 부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 만들어 갈 생각이었다. 고기, 야채 넣고 가루만 넣으면 완성되는 카레쯤은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카레는 너무 자극적이지 않나, 가루를 덜 넣고 묽게 만들면 죽에 섞어 드실 수 있지 않을까. 고민만 했다. 그러다 늘 잊어버렸다. 주말이 되어 부랴부랴 병원으로 출발하기 직전이 되면 그제야 떠올랐다. 

"앗, 카레 깜박했다. 다음 주엔 꼭 만들어서 가야지."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리고, 아버지의 삼우제 아침이 되어서야 실행에 옮겼다.

 

'오늘 차리면.. 아빠가 와서 먹는 걸까?', '이제 더 악화될 것도 없으니 이것저것 다 드셔도 괜찮겠지?'하면서 고기와 야채들을 잔뜩 넣었다. 카레 가루도 탈탈 봉지째 풀어, 진한 카레를 만들었다. 진하디 진한 카레향을 맡으며,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었다. 야채를 썰다 몇 번이나 칼을 놓아야 했다. 이까짓 카레 이게 뭐라고 이제서야 만들고 있나, 이 간단한 걸 여태 못한 건 대체 이유가 뭘까. 그리고 생각했다. 이 카레는 아버지를 위한 것이 맞을까. 죄책감을 어떻게든 덜어내려는 내 마음을 위한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너무 늦은 건 확실했다. 뒤늦게 만든 카레를 큰 통 가득 담아 아버지 묘소로 향했다. 초여름 뙤약볕 아래, 갓 만들어진 봉분 앞에 카레 그릇을 놓고 절을 했다. 

'아빠, 죄송해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그저 고개만 숙였다. 한참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엄마! 내일 점심 어떡해. 카레 또 나와!"

카레를 떠올린 건 8살 아이 학교의 점심 급식식단표 때문이었다. 아이는 전날 저녁이나 등교 전 아침에 그 급식표를 꽤나 주의 깊고 진지하게 살폈고, 옆에 붙어 서서 어떤 음식인지 설명해 주면 좋아했다. 

"오늘 나오는 명태피볶음 있잖아. 이건 니가 딱 보고 낯설어서 손도 안댈 수도 있어. 근데 꼭 먹어봐. 니가 좋아할 맛이야."

"피를 먹어?"

"....아니, 쥐포야, 쥐포. 너 쥐포 좋아하잖아. 그거랑 똑같은 맛이니까 먹어봐."


아이는 양념이 된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소든 돼지든 간장 양념보다는 소금을 뿌려주면 훨씬 더 잘 먹었다. 오이와 당근은 생으로 먹는 걸 좋아한다. 쥐포를 좋아한다. 블루베리, 산딸기를 최고로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건 치킨과 감자튀김. 아침에는 퍽퍽한 것을 먹기 싫어해 슈크림이나 씨리얼 등을 즐겨 먹는다. 김은 조미김보다는 곱창김을 간장에 찍어먹는 걸 좋아한다. 캔에 든 옥수수를 좋아하고 잔치국수를 좋아하고, 생선은 잘 먹지 않는다. 매운 맛을 싫어하고 미역국라면이나 튀김우동 같은 것을 좋아한다. 자장이나 카레, 볶음밥처럼 밥에 뭔가를 섞어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줄줄줄 아이의 취향은 길게길게 잘도 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도 여전히 아직도,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지 못한다. 정말, "자식 키워봐야 소용 없다"는 옛말은 진리다. 


"아들, 엄마는 소고기랑 회를 좋아해."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정성 들여 말해 주고 싶은 것은 왜일까. 

"뭐라고?"

"엄마는 소고기랑 회를 완전 제일 좋아한다고. 기억해. 나중에 물어볼거야."

"응."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한다. 8세 주제에 벌써 영혼없이 대답하는 법을 익히다니. 

"니가 돈 벌어서 사줘야 하는 거니까 꼭 기억하고 있어. 알았지?"

"...응."


기억해. 아들. 나중에 엄마처럼 후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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