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남기는 체험(體驗)의 힘
요즘의 세대가 찾는 카페와 식당은 맛만으로는 부족하다. 네온사인, 포토존,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자리 잡은 곳에서 고객은 음식을 먹는 동시에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경험을 소비한다.
이렇게 쇼핑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렇듯 매력적인 공간은 우리를 항상 멈추게 하고, 그 경험이 머릿속 기억으로 남을 때, 구매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것이 바로 공간의 마술이다.
시식코너 : 경험이 곧 확신
대형마트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은 언제나 시식코너다. 만두를 굽는 냄새, 지글거리는 고기 소리, 떡볶이의 매콤한 향 등.
이 경우 고객은 그냥 ‘공짜 음식’을 얻는 게 아니다.
맛을 직접 경험하며 확신을 얻는다.
이는 앞서 언급한 환경심리학(Environmental Psychology)에서 제시한 자극–유기체–반응(S-O-R)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 (Mehrabian & Russell, 1974).
자극(시식)이 고객의 감정과 태도(유기체)를 변화시키고, 결과적으로 행동(구매)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 소비자는 특히 “써보고, 맛보고, 체험한 후에야 구매한다”는 특성이 강하다. 그래서 국내 유통기업들은 시식과 체험 문화를 적극적으로 강화하며 고객의 신뢰를 얻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 : 체험을 파는 무대
그러나 이런 공간의 체험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세계적인 브랜드들도 경험을 판매한다.
애플스토어: 고객은 자유롭게 제품을 만지고, 시험하며 체험한다. 매장은 단순한 판매장이 아니라 브랜드의 무대다.
스타벅스: 제3의 공간(Third Place)은 집이나 직장도 아닌, 머무는 경험 자체를 판다.
이케아: 집처럼 꾸며진 쇼룸에서 가구를 직접 배치해 보며 생활을 상상하게 한다.
레고 스토어: 완성품 전시뿐 아니라 직접 조립하는 체험 공간. 놀이 경험이 곧 구매로 이어진다.
이들은 모두 Pine & Gilmore(1999)가 주장한 체험경제(Experience Economy)의 전형이다.
제품 자체가 아니라, 고객이 브랜드와 함께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
무신사 테라스, 올리브영 플래그십 스토어, 삼성·LG 베스트샵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무신사 테라스: 단순한 쇼룸을 넘어 전시·커뮤니티·체험이 결합된 공간.
올리브영 플래그십 스토어: 화장품을 발라보고,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체험하도록 설계.
삼성·LG 베스트샵: 거실·주방을 그대로 재현해 실제 생활 속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Schmitt(1999)가 제시한 체험 마케팅(Experiential Marketing) 개념과 연결된다.
즉, 감각·감정·인지·행동을 자극하는 체험이 곧 브랜드와 고객을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결국, 오늘날 경험은 곧 콘텐츠이며, 소비는 그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홈쇼핑 : 대리 체험에서 실물 체험으로
홈쇼핑은 대표적인 대리 체험 매체다.
쇼호스트가 직접 눕고, 마시고, 조리하는 모습은 시청자에게 간접 경험을 제공한다. 사실, 화면 속 장면은 단순한 시연이 아니라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장치다.
이는 역시 Bitner(1992)의 서비스스케이프 이론(Servicescape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물리적·디지털 공간은 고객의 감정과 행동을 형성하며, 홈쇼핑 스튜디오는 가상의 체험 공간으로 기능한다.
여기에 유사사회적 상호작용(Parasocial Interaction, Horton & Wohl, 1956) 개념이 더해진다.
시청자는 쇼호스트와 심리적으로 연결되며, 쇼호스트의 경험을 자신의 경험처럼 받아들인다.
따라서 홈쇼핑의 대리 체험은 실제 구매로 이어지고, 최근에는 오프라인 체험관을 통해 실물 체험으로 확장되고 있다.
즉, 홈쇼핑은 대리 체험 → 실물 체험으로 이어지는 다리이며, 이는 오늘날 경험 기반 소비 패러다임의 중요한 축이다.
체험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구매가 된다
공간의 기술이 고객을 길 위에서 움직이게 했다면, 공간의 마술은 고객을 멈추게 하고 체험하게 만든다.
시식의 한 입, 애플스토어의 손끝 경험, 인스타그램의 한 장면, 홈쇼핑의 대리 체험 등. 이 모든 경험은 고객의 기억으로 남고, 기억은 결국 구매로 이어진다.
결국, 오늘날 경험은 곧 콘텐츠이며, 소비는 그 경험을 SNS에서 공유하는 순간 완성된다.
또한, 요즘처럼 주의력이 귀한 자원이 된 시대에는, 공간의 체험이 얼마나 ‘주의를 끌고 유지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공간은 체험을 만들고,
체험은 기억을,
기억은 소비를 만든다.
참고문헌
Bitner, M. J. (1992). Servicescapes: The impact of physical surroundings on customers and employees. Journal of Marketing, 56(2), 57–71.
Pine, B. J., & Gilmore, J. H. (1999). The Experience Economy.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Schmitt, B. (1999). Experiential marketing. Journal of Marketing Management, 15(1–3), 53–67.
Mehrabian, A., & Russell, J. A. (1974). An Approach to Environmental Psychology. MIT Press.
Horton, D., & Wohl, R. R. (1956). Mass communication and parasocial interaction. Psychiatry, 19(3), 215–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