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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전략(The strategy of Space)

브랜드 세계관을 설계하는 공간의 힘

by 성민기

요즘 상품은 단순히 ‘무엇(what)’을 파느냐보다 ‘어디(where)’에 두느냐가 더 중요하다.

상품은 위치에 따라 다르게 읽히며, 그 장소는 이제 오프라인 매장뿐 아니라 디지털 화면과 가상세계까지 확장된다. 더 이상 공간은 단순한 배치가 아니라, 전략의 무대가 되었다.


매장 디스플레이 : 시선이 머무는 자리

오프라인 매장은 아무렇게나 상품을 쌓아두지 않는다.
상품의 위치와 높낮이, 조명의 각도 하나까지 전략적으로 설계된다.

백화점 : 명품 브랜드는 언제나 1층 입구에 자리한다. 가장 먼저 보이는 공간이 곧 브랜드의 위상을 증명한다.

대형마트 : 마진이 높은 PB상품은 눈높이에, 경쟁상품은 아래쪽에 배치된다.

편의점 : 맥주는 입구 오른편, 간식은 계산대 앞. 고객이 무심코 손을 뻗는 자리에 놓는다.

소비자 연구에서는 이를 “Eye level is buy level(눈높이에 놓인 상품이 팔린다)”라고 부른다.
즉, 상품의 위치가 곧 매출을 결정한다.


온라인 공간 : 디지털 서비스스케이프

오늘날 고객은 매장보다 모바일 화면을 먼저 소비한다.
인스타그램 피드, 네이버 쇼핑 메인, 유튜브 썸네일 등.
첫 화면 어디에 어떤 상품이 보이는지가 클릭과 구매를 좌우한다.

Rosenbaum & Massiah(2011)는 이를 디지털 서비스스케이프(Digital Servicescape)라 불렀다.

디지털 공간 역시 오프라인 매장과 마찬가지로 구매를 유도하는 설계된 환경이라는 것이다.

온라인 디스플레이 역시 오프라인과 동일한 원리가 작동한다.
즉, 눈에 먼저 띄는 자리, 고객이 가장 오래 머무는 화면이 곧 매출의 차이를 만든다.


메타버스 쇼룸 :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

삼성·현대차 같은 글로벌 브랜드는 메타버스 안에 쇼룸을 만들고 있다. 고객은 가상공간에서 차에 앉아보고, 가구를 배치하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체험을 한다.

Verhoef et al.(2015)의 *옴니채널 전략(Omnichannel Strategy)*은 이를 설명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나아가 가상공간은 단절되지 않고 연결된다. 이렇게 고객은 채널을 오가며 경험을 이어가고, 공간은 무한히 확장된 전략적 무대가 된다.


AI 공간 : 개인화된 전략의 무대

메타버스가 공간의 무대를 확장했다면, AI는 그 공간을 개인별로 재설계한다.

오늘날 상품의 위치는 더 이상 고정되지 않는다.

온라인 쇼핑몰의 추천 상품,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 피드 등. 같은 공간이라도 고객마다 다른 ‘첫 화면’이 펼쳐지고, AI는 그 순간을 전략적으로 배치한다.

Verhoef의 옴니채널 전략은 AI에 의해 더욱 정교해진다. 공간은 이제 확장에서 개인화로 진화하며, 브랜드 세계관은 고객별 맞춤 무대로 변환된다.


예술적 전략 : 슬립노모어의 몰입형 공간

브랜드만이 아니다. 예술 역시 공간을 전략으로 사용한다. 뉴욕의 연극 〈Sleep No More〉는 전통적인 무대가 없다. 관객은 호텔 전체를 자유롭게 걸으며 배우와 같은 공간에서 이야기를 체험한다.

그 공간에 펼쳐진 시계, 가구, 조명 하나까지 모두 서사의 일부가 된다.

이는 Pine & Gilmore(1999)가 말한 체험 설계(Experience Design)의 극단적 사례다.
〈슬립노모어〉는 공간이 단순한 배경을 넘어 브랜드와 세계관 자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경험은 특정 무대가 아니라, 공간 전체가 만든다.


공간은 전략이다

시간이 순간을 만들고, 공간은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공간은 브랜드의 전략이 된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디지털 피드, 메타버스, 예술적 몰입 공간까지 우리는 상품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담긴 전략적 세계관을 함께 소비하고 있다.


참고문헌

Bitner, M. J. (1992). Servicescapes: The impact of physical surroundings on customers and employees. Journal of Marketing, 56(2), 57–71.

Rosenbaum, M. S., & Massiah, C. (2011). An expanded servicescape perspective. Journal of Service Management, 22(4), 471–490.

Verhoef, P. C., Kannan, P. K., & Inman, J. J. (2015). From multi-channel retailing to omni-channel retailing. Journal of Retailing, 91(2), 174–181.

Pine, B. J., & Gilmore, J. H. (1999). The Experience Economy.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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