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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선택

자발적 선택을 유도하는, 넛지(Nudge)

by 성민기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대부분 그 결정을 스스로 했다고 믿는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나 상품을 구매할 때,

짜장과 짬뽕

설문에 답할 때조차 우리는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했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 선택이 이미 누군가 설계해 놓은 길 위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지하철 환승역 바닥에 그어진 색깔 라인을 따라 걷는 것처럼. 마치 자유롭게 걷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군가 아주 조심스럽게 ‘살짝 밀어준’ 방향대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강요하지 않지만 유도하는 기술을 바로 넛지(Nudge)라고 말한다.


선택은 자유롭게 남겨두되 그중 하나가 유독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설계하는 전략이다.


넛지란 무엇인가?

넛지란 ‘팔꿈치로 살짝 찌르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이 함께 쓴 『Nudge』에서는 이를 “선택은 그대로 두되, 방향만 살짝 제시하는 설계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핵심은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행동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명령이나 강요 없이 설계만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래서 효과적이고 더 지속 가능하다.


일상 속 넛지

가장 유명한 사례는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의 남자 화장실이다. 소변기에 파리 그림 하나를 그려 넣었더니 남성들이 무의식적으로 그 파리를 조준하며 소변기 밖으로 튀는 오염이 80%나 줄었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의 파리, 노래하는 계단

홍보문구나 경고, 벌금도 아닌 단 하나의 작은 그림이 청결을 바꾼 것이다. 이처럼 넛지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그러나 명확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 밖의 대표사례는 다음과 같다.

계단 옆 피아노 건반 그림
→ 걷는 재미를 줘서 에스컬레이터보다 계단 선택 유도
접시 크기 줄이기 → 음식 섭취량 감소
유튜브 자동재생 기능 → 더 오래 머무르게 유도
홈쇼핑 멘트
→ “단 한번 사은품 증정”, “무료 체험 후 결정하세요”
넛지를 설계하는 기술

넛지는 단순한 이론을 넘어 행동경제학의 핵심이 되는 ‘행동 유도 전략’이며, 사람의 선택을 부드럽게 움직이도록 설계하는 기술이다.


이 전략의 강력한 실전 사례는 세계적인 IT 기업 구글(Google)의 구내식당 운영 방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구글은 직원 복지 차원에서 24시간 무료로 구내식당을 개방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직원들의 과식과 체중 증가 문제가 나타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넛지를 도입했다.

구글 카페테리아


디폴트(default) 설정 – ‘샐러드가 기본’

가장 먼저 실행한 건 샐러드를 식당 입구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배치하는 일이었다.
그 결과, 직원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샐러드부터 선택하게 되었고, 이는 ‘채소를 먹는 것이 기본값’이라는 인식을 만들었다.
디폴트를 바꾸자, 행동도 바뀐 것이다.


접시 사이즈 조절 – 과식 억제

다음으로는 접시의 크기를 줄이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넛지 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각적 넛지로 큰 접시보다 작은 접시를 사용할 때 덜 담게 되고 덜 먹게 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 결과, 구내식당을 찾은 직원 중 3분의 1이 자연스럽게 식사량을 줄였다.

유혹의 차단 – 불투명 용기

마지막으로는 구내에 배치된 초콜릿 유리병을 불투명 철제통으로 바꾸는 실험을 했다.
단순히 시야에서 유혹을 차단한 것만으로도 직원들의 주간 칼로리 섭취량이 300만 칼로리 이상 감소했다.

이처럼 구글은 넛지를 활용해 직원의 건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선택하게 만들었다.
아무도 ‘채소를 먹어라’, ‘과식하지 마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더 건강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넛지의 힘이다.


말 한마디 없이,
설계만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전략.
디폴트 설정: 기본값을 바꾸면 행동도 따라간다.
(예: 자동차 좌석 안전벨트 자동 알림)
시각적 강조: 눈에 띄게 배치하기
(예: 유기농 코너를 입구에 배치)
추천 문구 활용:
“사장 추천”, “오늘 가장 많이 팔린 메뉴”
사회적 증거: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했어요”라는 문구

이렇듯 넛지의 설계자는 직접 행동을 명령하지 않는다.

다만,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움직이게끔 환경을 설계할 뿐이다.

넛지는 설득하지 않는다. 유도할 뿐!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설득은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스스로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휴리스틱 X 넛지

그렇다면 내 안의 본능 휴리스틱과 외부에서 설계되는 넛지가 시너지를 낸다면 어떨까?

휴리스틱: 내 안의 본능적 판단.
“리뷰 많은 제품은 왠지 믿을 수 있어.”
“예전에 맛있게 먹은 짬뽕이니까 이번에도 먹자.”
넛지: 외부에서 조심스럽게 설계된 유도.
“짜장면이 메뉴판 가장 위에 있었기 때문.”
“오늘 사장님 추천 메뉴라고 적혀 있어서 선택했다.”
tempImagee41ywf.heic 넛지와 휴리스틱

‘소비자의 본능’과 ‘판매자의 설계’가 조화를 이룰 때
선택은 자연스럽고 더 강력해진다.


진짜 설득은 말이 아니라 선택지를 설계하는 힘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설계는 우리의 본능 위에 아주 부드럽게 얹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 그 순간에도
어쩌면 이미 정해진 선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선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설계해 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넛지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If you want to encourage someone to do something, make it easy.” -Richard H. Thaler-(“누군가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고 싶다면, 그 일을 쉽게 만들어라.” -리처드 탈러- )



참고문헌

Thaler, R. H., & Sunstein, C. R. (2008). Nudge: Improving Decisions About Health, Wealth, and Happiness. Yale University Press.

Richard H. Thaler – Nobel Prize Lecture (2017)

Daniel Kahneman (2011). Thinking, Fast and Slow. Farrar, Straus and Giroux.

Ariely, D. (2008). Predictably Irrational. Harper.

Sunstein, C. R. (2014). Why Nudge? The Politics of Libertarian Paternalism. Yal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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