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방향이 바뀐 것뿐이라고 답하겠어요
아, 나에게도 분명한 길이 있었으면! 때때로 그런 생각을 했다.
요리와 자동차.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던 내 두 동생을 포함하여, 친구들조차도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경주마처럼 자신의 삶에 열심이었다. 오로지 나만이 뚜렷한 목표 의식도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기분이 들어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었다. 고등학생일 때는 디자이너를 꿈꾸며 그래픽 디자인 학원을 다녔고, 수능이 끝난 뒤 메이크업 학원을 다니다가 대학에서 메이크업을 전공했다. 그리고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다녀와서는, 편입을 하여 일본어를 공부하며 IT 회사에 근무했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이 따로 없었다. 어느 날은 사진을 찍으러 다녔고, 작곡과 악기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나의 이런 행보를 곁에서 쭉 지켜봤던 한 친구는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되고 싶은 게 뭐야?"
글쎄. 그 질문에 나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목표도 없이, 그저 하고 싶은 것들을 되는대로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쯤 내가 포토그래퍼로 참여했던 앨범의 프로듀서였던 K오빠는 나를 '종합예술인'이라고 불러줬다. 짊어지기도 부끄러웠던 그 거창한 말을 잘 뜯어보면, 그냥 나는 이것저것 다 하는 평범한 직장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밥 한 번 먹자는 가벼운 약속을 성실히 지켜주던 친구들은 늘 나의 근황을 궁금해했다. 소식 업데이트 전의 직업과 현재의 직업은 일치하는지, 지금은 또 무엇을 시작했는지, 전에 하던 그 취미활동은 여전히 유효한지 등. 만날 때마다 새로워지는 나의 근황에 친구들의 시선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을 바라보듯 했다. 흥미롭고도 불안한, 그 시선을 받을 때마다 나는 구태여 더 씩씩하고 자유로운 척을 했다. 되지도 않는 허세에 누군가는 응원을, 누군가는 시샘을 보내기도 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현재의 내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되었다.
나는 30대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육아와 일을 동시에 멋지게 해내는 워킹맘이 되어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환상이었다. 30대가 되어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네 자리 연도의 마지막 숫자가 바뀌는 것이나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것은 그저 어제의 연장선이고 숫자에 불과했다. 나는 변함없이 즉흥의 감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롭고 싶은 영혼이었다.
그럼에도 불현듯 올라오는 '불안'이라는 감정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대로 철없이 나이만 들다가 제대로 이룬 것 하나 없이 죽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길을 잃은 강아지처럼 오들오들 떨다가 끝내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말 길을 잃은 것 같아 이대로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근본적이고도 철학적인 원점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40대가 된 지금은 답을 찾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아니요'로 대답할 것이다.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이 되었어도, 나는 여전히 갈대처럼 살랑이는 바람에도 하염없이 흔들린다. 베이킹이 내 천직인 줄 알았건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런 사업장을 운영하기에 일단 나는 사업가 체질이 아닐뿐더러, 체력이 바닥이라 꾸준히 운영할 자신도 없다. 그리고 그럴만한 돈도 없다.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더 이상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은 있다. 단지 그 길을 보지 못할 뿐. 내가 경험했던 수많은 것들은 이제 나의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길을 통합하면 된다. 그럼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테니까. 길은 잃은 것이 아니라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제 그곳으로 발을 내딛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길을 잃었다 생각이 드는 당신이라면 나는 마음을 다해 축하의 박수를 보내겠다. 새로운 차원으로 걸을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렸으니 함께 걷자 손을 내밀어 드리고 싶다. 나는 그렇게 당신의 든든한 동지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