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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앨리스 Apr 19. 2024

어떤 봄의 기억

당신은 어떤 봄을 바라보고 있나요

사당동. 두 번째 자취집, 2020 / RICOH GXR + A12 Mount with Voigtländer NOKTON Classic 35mm F1.4 M.C

  2020년 어느 날의 봄을 되돌아본다. 늘 헛헛한 마음을 안고 살던 나에게 빛이 되었던 그를 다시 기억하고 싶은 까닭이다.


  독립을 하고 처음 자취를 시작했던 곳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2층짜리 구옥의 1층이었는데, 한 개뿐인 방과 거실 겸 주방에는 무늬유리에 나무장식이 붙어있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오후가 되면 집 안 깊숙이 빛이 들 정도로 채광 또한 좋은 집이었다. 이사를 하고 처음 맞이하던 봄. 창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에도 봄기운이 가득 묻어있던 그날은 유난히도 포근했다. 작업실에서 일찍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기에도 예쁠 만큼 적당한 구름이 태양과 술래잡기를 하는지 집안 가득 빛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얼른 카메라를 챙겨 주방 창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늬 유리창을 통해 반사되는 빛은 멋진 빛망울을 보여주고 있었고, 나는 그 찰나를 놓칠 새라 셔터를 눌렀다. 더욱 영롱한 빛망울을 담기 위해 조리개를 열고 일부러 초점을 흐렸다. 그리고 완벽한 하트를 만들기 위해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그렇게 만든 한 컷은 구옥의 오래된 창문이 제공해 준 새로운 놀잇거리였다.


  그 장면을 즐기면서, 내게 봄 햇살 같이 따사로운 마음을 안겨준 그가 신기루처럼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나 정성스럽게 빛 앞에서 하트를 만들고 있었나 보다. 손에 꼭 잡고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렇게 드러나고 말았나 보다.

  그러나 소중한 것은 손에 힘을 주어 꼭 쥐면 쥘수록 쉽게 부서지고 만다. 그 또한 그랬다.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안겨주고, 그는 결국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없던 사람처럼 사라졌다. 거기에는 내 의지가 더해져 이제는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을 만큼 희미해졌다.   


  포근하던 어느 날의 봄에 마주했던 한 장면은 내 인생과 꼭 닮아 있었다. 갑자기 어두워졌다가도 구름이 걷히고 나면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정말 그러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어둠도 결국 언젠가는 끝나게 마련이고, 그렇게 찾아온 빛은 어둠과 대비되어 더 밝게 빛난다. 어둠이라 여길수도 있었지만, 사실 그는 내가 바라던 소원을 이뤄준 램프 속 지니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소식조차 모르지만, 눈부신 햇살 같은 아이를 안겨준 그에게 진심을 다해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또다시 돌아온 봄, 하나가 아닌 둘이 되어 네 번째 맞이한 이 계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봄은 충만한 행복이다. 더 바랄 것도 없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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