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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앨리스 Oct 20. 2023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었다.

나의 작은 거인에게 언젠가는 들려줘야 할 이야기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2020년 5월, 봄의 한가운데에서 찬란한 태양을 마주하고 걸어가면서 나는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내 안에 잉태된 새 생명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는 왜 그렇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을까.

  간단히 말하면 당혹스러움, 좀 더 깊은 의미를 담아 말하자면 무거운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기집을 확인한 날. 나에게 작은 생명이 찾아왔다.


  마음을 나누던 그에게 겨우 입을 떼 새 생명의 존재를 알렸다. 그는 뛸 듯이 기뻐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책임을 함께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 그럴 테지. 나 또한 이렇게 어깨가 무거운 것을. 이해하는 마음도 잠시, 사랑이라는 알량한 감정을 앞세워 '나보다 더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해야 해'라며 90년대 인기가요의 가사 같은 말을 내뱉는 그를 나는 무척이나 미워하게 되었다. 짙은 녹색과 파랑이 섞인 오묘한 눈동자를 가진 그는 그렇게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안기고 영영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그를 내 인생에서 지워버렸다. 아빠가 되겠다는 결심을 딱 일곱 번 번복하던 그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름만큼은 직접 지어줬으면 좋겠다는 나의 소망에, 그는 그 조차도 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엄마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은 아니라며, 그저 모든 것에서 도망치길 바라는 그에게 나는 기꺼이 자유를 주었다.


  주변에 이 사실을 알렸을 때 수도 없는 걱정과 염려를 받았다.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일이 이렇게나 다양한 형태의 두려움이라니. 엄마가 되겠다는 결정이 과연 옳은 일일까, 나 또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우주를 품고 있는 내 안의 작은 생명에게 세상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좋은 의미를 가진 온갖 단어를 전부 수집할 기세로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세상 모든 행복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올'이라는 태명을 지어줬다.


젤리곰이 된 나의 보물. 그 사이에 팔과 다리가 생겼다.


  다올이는 뱃속에서 정말 무럭무럭 자라났다. 작은 점에서 큰 동그라미가 되더니, 어느덧 팔다리가 생겨 젤리곰의 형태가 되었다. 초음파 검사를 할 때마다 점점 사람의 모습을 갖춰가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대견했는데, 심장 박동 소리를 들을 때에는 늘 뭉클해져서 의사 선생님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은 출근을 하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져 크게 넘어지는 일이 있었다. 피멍이 엉덩이 전체를 뒤덮을 만큼 아팠지만 그보다 배 속의 다올이가 무사한지가 더 걱정이었다. 임신 초기여서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는 조심해야 했는데, 이렇게나 조심성이 없는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결국 그날은 택시를 타고 출근을 했다.


  작은 베이커리에서 베이커이자 파티셰로 일을 하던 나는 이른 새벽 일어나 뜨거운 오븐 앞에 내내 서서 일을 해야 했다. 날씨는 슬슬 더워지고 있었고, 그즈음 경기도로 이사를 하게 되어 출퇴근 소요 시간은 3시간 반에 육박했다. 다올이가 커감에 따라 내 배도 점점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모든 것이 버겁게만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입덧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입에도 대지 않던 배추김치나 칼칼한 음식들이 당겼던 것을 보면 일명 '먹덧'이라고 부르는 입덧의 한 종류였던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임신을 하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감정이 급변한다는데, 하루하루가 다른 신체의 변화에도 내 마음은 그저 평온하기만 했다. 아마 속을 썩이는 존재들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구구절절 설명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임신 당시 나는 가족들과 연락을 끊은 채 살고 있었다. 아주 간간히 여동생만이 생사여부를 확인하듯 전화를 걸어왔다. 그것이 가족과 연결고리의 전부였다. 세상에 혼자 남겨져 비빌 언덕도 없는 것 같은 외로운 마음이 들 때면, 어느새 커다란 산처럼 우뚝 솟은 배를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그럴 때는 다올이에게 말을 걸었다. 별 대단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오늘 나의 기분은 어땠는지, 다올이를 어떤 아이로 성장시키고 싶은지에 대한 나의 다짐, 혹은 아주 먼 미래의 계획 같은 소소한 것들이 주제가 되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다올이는 기특하게도 태동으로 반응을 해주었다. 그런 교감들이 쌓이고 나니 아이의 존재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막내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연락을 안 한 지 1년이 훌쩍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애써 덤덤한 척 무심하게 전화를 받았다.

  "어, 웬일이냐?"

  핸드폰 너머의 남동생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냥, 이라고 대답했다. 잠깐의 어색한 침묵 뒤에 남동생은 갑자기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여동생에게서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잘 좀 살지, 이 사람아... 하며 숨도 채 쉬지 못하고 우는 남동생의 목소리는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처럼 커다란 파동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요동치는 감정을 꾹꾹 잘 눌러 담고 오히려 남동생을 위로했다.

  "누나 잘 살고 있어. 진심으로 그 어떤 날들보다 더 행복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는 장장 세 시간을 그간 밀린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한동안 소리 없이 울었다. 아무도 듣는 이가 없었지만 왠지 소리 내어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큰 소리로 울음을 뱉어내고 나면, 나에게 정말 큰일이 생겼다고 인정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그러면 뱃속에서 끊임없이 '나 여기 있어요!'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이 작은 생명에게 죄책감이 들 것 같아서.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눈물이 뚝하고 멈췄다. 그래, 이건 슬프거나 잘못된 일이 아니야. 축복이고 선물이야. 기쁘게 받아야 할 사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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