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패션의 동의어
'독일 패션'이라는 키워드를 듣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샌들에 양말'을 떠올릴까? 양말을 신은 뒤 샌들을 신는 이 스타일은 특히 휴양지에서 포착되는 독일 관광객들을 비웃기 위한 묘사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죽 버켄스탁 샌들에 흰 테니스 양말' 콤비. 글로 쓰이진 않았지만 이 두 단어의 조합은 아름답다거나 멋지다는 방향과는 정 반대를 향하고 있다. 독일 사람들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어 샌들과 양말은 곧 독일 관광객 (deutsche Touristen)이며, 스타일 범죄자 (Stilsünder)이며, 패션적 무례 (Mode-Fauxpas)라는둥 그 동의어의 변주가 끝이 없다.
이 이야기는 이 스타일에 대한 변호다. 독일에 몇 년 살았던 사람이라고 독일화가 되었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다. 사실 나는 독일과 접점을 맺기 이전부터 양말과 샌들 조합을 좋아했다. 콕 집어서 그 스타일만을 좋아했다기보다는 실용적이고 편한 착장의 선호와 위생적 이유가 발 위에 구현된 결과다. 발이 찬 편이고 어떤 신을 걸쳐도 물집이 생기는 피부를 가진 내게 양말은 보호막이 된다. 운동화나 구두와 달리 앞뒤가 뻥뻥 뚫려 있으니 환기도 되고, 샌들에 땀이 묻는 것도 어느 정도 방지된다. 무엇보다 알록달록 반짝이는 나의 양말을 여름에도 뽐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얇은 글리터 원단의 양말이나 파스텔 또는 원색의 양말을 샌들에 매치하는 것을 좋아한다. 샌들과 양말의 나라에 사는 김에 가끔 슬쩍 흰색의 스포츠 양말을 신기도 한다. 왜 '슬쩍'으로 수식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두툼한 하얀 양말은 스을쩍 집어야 할 것 같은 기분.
독일 패션 스타일의 대표급으로 격상되었지만 이 룩의 창시자는 독일 사람이 아니다. 오래전 로마와 이집트, 일본에서도 사람들은 양말과 샌들 조합을 발견했다고 한다. 심지어 '양말과 샌들' 위키피디아 페이지는 독일어로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여기서는 양말과 샌들의 첫 기록은 북요크셔에서 발견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애슬레저, 어글리 슈즈, 대디 스니커즈 등의 열풍에 양말과 샌들 역시 슬쩍 수저를 올린 적이 있다. 편안함과 실용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의도적으로 아름답거나 쿨하게 보이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가진 시류였다. (이 스타일 자체에 패셔너블함을 입히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양말에 샌들 룩은 왠지 히피 스타일과 곧잘 연결이 되는데, 2022 봄-여름 디올 옴므 컬렉션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하지만 패션 브랜드들이 제안하는 스타일이 모두 큰 유행이 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2008년 경의 배기팬츠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해외 연예인은 물론이고 국내 유명인들이 열심히, 다양한 배기팬츠를 포토월 앞에서 선보였다. '배기팬츠에 하이탑 스니커즈가 패션 핫 아이템'이라는 기사도 나왔다. 다양한 브랜드뿐 아니라 지하철 지하상가나 보세샵에서도 배기팬츠를 팔았다. 그리고... 개같이 멸망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스키니 팬츠가 남녀 불문 하의 시장을 평정한 것으로 모자라 최근 와이드 팬츠가 세력을 늘리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을 군림하고 있었다.
큰 트렌드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셀러브리티들과 인플루언서들이 제각기 해석한 샌들과 양말 룩은 재미있었다. '아무 양말'에 '아무 샌들'을 신기 주저하게 된다면 이때 유명인들의 스타일을 참고해 볼 수 있다. 히피 스타일로 두 사이즈는 큰 듯한 두껍고 목이 긴 니트 양말을 무심하게 흐르듯 신고 비슷한 색조의 샌들을 신거나, 트래비스 스캇처럼 올블랙 샌들에 올블랙 양말을 신어도 괜찮고 (샌들이 루이비통일 필요는 없다), 독일 관광객처럼 인체공학적 디자인의 샌들에 통기성 좋은 원단의 양말을 신어도 좋다. 생각보다 흉하지 않고, 보기보다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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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단어
modisch 유행에 맞는, 스타일리시한, 패셔너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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