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청바지
청바지 이야기는 미국에서 한 유대계 독일인에 의해 시작된다. 캘리포니아의 골드 러시 기간 바이에른주 부텐하임 (Buttenheim) 출신 뢰브 슈트라우스 (Löb Strauss), 미국식으로는 리바이 스트라우스 (Levi Strauss)가 자신이 판매하던 텐트에서 남은 캔버스 원단을 작업복에 사용하며 탄생한 것이 리바이의 (Levi’s) 바지가 되었다. 지금 가장 기본적인 스타일이 된 5포켓 진에는 왜 주머니가 다섯 개나 있을까? 앞면의 두 개와 뒷면의 두 개에 더한 하나의 작은 포켓은 바로 광부들이 일을 하면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시계를 넣는 공간이었다. 청바지가 데님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프랑스의 님 (Nîmes) 지방에서 생산된 질기고 튼튼한 원단인 Serge de Nîmes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De Nîmes, '님'으로부터 왔다는 뜻이다. 청바지의 또 다른 이름인 진(Jeans)은 바지의 형태와 관련이 있는데, 그 원형이 이탈리아 제노바 근처에서 탄생한 면바지였고, 제노바를 프랑스식으로 발음한 진(Gênes)이 미국으로 와 Jeans가 되었다고 한다.
신대륙에서 시작된 이 편한 바지가 바다를 건너 유럽 대륙으로 건너오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자유와 혁명의 상징인 파란 바지를 얻기에는 현실적인 장벽이 컸다. 정보나 물류의 이동과 교환이 지금만큼 빠르지도 않은 시대였고, 독일 측의 면 소재 의류의 수입 제한도 그중 한 이유였다. 그럼 과연 누가, 언제, 어떻게 이 데님 진을 유럽으로 가져왔을까? 그 시작은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고국인 독일이었다.
골드 러시 기간이 끝난 지 한참 뒤, 독일 퀸첼자우 (Künzelsau)에 위치한 작업복 제조사 집안의 사위인 알베르트 제프라네크 (Albert Sefranek)는 1948년 프랑크푸르트의 한 바에서 미군들을 만나 증류주 여섯 병을 주고 리바이스 청바지 여섯 벌을 받아 온다. 공식적으로는 청바지를 미군 기지의 PX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지만, 호헨로헤 (Hohenlohe) 지방의 브랜디로 물물교환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이 패턴을 사용해 유럽 최초의 청바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는 유럽 최초뿐만이 아니라 미국 밖에서 생산된 첫 청바지였다. 다만 이 바지는 아직 '데님'으로 불릴 수는 없었다. 님 지방의 원단을 구할 수 없어 당장 사용이 가능한 트윌 원단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남색으로 염색하지 않은 원단이었기 때문에 '블루진'이라 부를 수도 없었다. 이 바지는 카우보이 바지라 또는 아미호젠(Amihosen)이라 불렸다.
유럽 청바지의 전설로도 내려오는 물물교환 이야기이지만, 청바지의 독일 시장 입성은 쉽지 않았다. 미국 문화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소수였고, 대다수는 청바지의 딱 맞는 핏을 저속하다고 여겼다. 당장 알베르트 제프라네크의 장모이자 이 생산업체의 사장이었던 루이제 헤르만(Luise Hermann) 역시 사위가 가져온 청바지들을 보고는 '회전목마 운전수가 입는 바지(Karussellfahrerhosen)'라며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미국과의 연관성이 높은 제품인지라 '독일을 점령한 연합군'을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비치기도 했고, 나중에는 정치적 좌파를 의미하는 옷이 되기도 했다.
제프라네크의 회사는 이어서 또 하나의 혁신적인 제품으로 1953년 유럽 최초의 여성용 청바지(Girls Campinghosen)를 내놓았고 (메리 퀀트의 미니스커트가 60년대가 되어서야 나온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해 보면 꽤 파격적인 행보였다.), 1961년에는 세계 최초로 스트레치 소재의 청바지를 출시했다. 실용적이고 편한 패션이라면 뒤처지지 않는 독일 패션회사답다. 1958년 미국식 라이프스타일이 독일에서 더욱 인기를 끌게 되자 이 회사는 제프라네크의 장모님의 이름을 땄던 이름인 L. Hermann KG에서 미국식 느낌을 물씬 더한 방향으로 회사 이름을 바꾼다.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첫 청바지를 개발했던 서부 개척시대의 느낌을 담아 야생마에서 영감을 받은 그 이름은 말 그대로 야생마, Mustang이다.
첫 입성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청바지는 곧 독일에서도 전통과 권위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된다. 이에 또 다른 별명을 얻는데, 바로 텍사스 바지(Texashose)다. 50년대 독일 기성세대에게 청바지는 곧 "폭력적인 미성숙과 관습에 대한 고의적 반항의 상징"이었다. 동독에서는 청바지 때문에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는 일도 일어났다. "캘빈 클라인 바지와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광고 논란이 일어난 것이 80년대였고, 몇 년 전 미우미우의 로우 라이즈 진 역시 큰 관심을 끈 것을 보면 청바지는 오랜 기간 좋으나 싫으나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 독일에서는 "청바지 계의 파타고니아"라고 하는 쾰른 출신 브랜드 Armedangels가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청바지의 역사만 훑어봐도 사회의 변화와 키워드가 보이는, 참 재미난 옷이다.
독일어 단어
Herausforderung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