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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g Mar 28. 2024

벗기로는 세계 챔피언

나는 독일에서 반(半) 나체주의자라 할 수 있다. 옷을 벗고 이용하는 사우나와 온천은 독일 생활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며, 헬스장이나 호텔도 사우나를 하기 위해 이용한다. 남녀 공용이긴 하지만 상관없다. 하지만 잔디밭이나 호수에서는 완벽한 나체가 되는 것에 약간의 거리낌이 있는데, 벗은 몸 자체가 불편하기보다는 위생이나 신체 보호의 이유에서다. 


나체주의, 줄임말인 FKK라고도 불리는 '자유신체문화(Freikörperkultur)'는 독일 문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키워드 중 하나다. 오랜 기간 같은 나라인 적이 없었으며 여전히 연방주의로 인해 문화도 생활양식도 각기 다르지만, 나체주의만큼은 독일 전역에서 두루두루 나타난다. 뮌헨의 영국 정원이나 플라우허 강가, 공원 곳곳에서는 옷을 벗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고, 사우나나 호수뿐 아니라 호텔이나 헬스장의 사우나 역시 남녀 공용이다. 나체로 운동이나 하이킹, 수영을 하는 것 역시 건강하다고 여겨진다.


나체주의의 선두주자이자 세계 챔피언인 독일. Freikörperkultur라는 단어가 생기고 많은 관련 동호회나 협회가 만들어진 것은 1925년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였지만 이미 19세기말 독일에서는 자연주의자 협회가 설립되었고, 1900년 경부터 자연주의 운동은 건강하다는 이유로 권장되었다고 한다. 비교적 일조량이 부족한 계절에 몸의 최대 면적을 활용해 햇빛을 받기 위해서라 영국과 독일에서 옷을 벗고 일광욕을 하거나 공원에 나가는 것이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산업 혁명으로 촉발된 빠른 산업화와 도시화다. 점점 일상생활에서 기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아지고,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주거 환경은 비좁아지고 자연과의 접촉은 줄어들었다. 다시 인간 중심 문화로 돌아가고자 했던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처럼, 사람들은 산업화에 대항해 자연으로 회귀하고자 했고 이를 자연주의, 나체주의로 표현했다. 산업 노동을 통한 신체의 비인간화, 자본주의적 착취에 반대하는 자연주의자 운동에는 "진정한 사람은 벌거벗은 사람이다 (Der wahre Mensch ist der nackte Mensch.)"라는 괴테의 말이 힘을 실어주었다.


독일에서는 나치 시대를 거치면서 나체주의가 금지되었다. 하지만 나치 정권이 붕괴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자연주의는 부활했다. 유럽 대부분과 일본까지 영향을 미쳤던 반권위주의 운동인 68 운동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968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68 운동은 기성세대에 큰 의문을 제기하는 청년 세대의 분노 표출이었다. 권위에 맞서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독일의 경우엔 나치와 관련된 과거 청산을 수면 위로 올렸다. 여러 국가에서 보수 정권이 물러났고, 우리가 진보적이거나 개방적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서구 국가들의 방향성은 68 운동을 기점으로 바뀐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미국에서는 히피 문화로 발전했고, 다시 유럽에도 역수입되어 인기를 끌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고, 사회의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고, 모든 형태로부터의 억압에 반대하며 자유를 숭배하는 젊은이들은 벗은 신체를 성적으로 보는 시선에서도 탈피하고자 했다. 자연주의, 나체주의는 곧 성 해방을 뜻했다.


이 모든 시간을 지나 70년대와 80년대 뮌헨은 나체주의자의 본거지가 되었다. 웬만한 공원이나 호숫가에서는 벌거벗은 채 걷거나, 쉬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FKK 문화가 서독보다는 동독 지역에서 특히 더 강했던 것과 뮌헨이 독실한 가톨릭 도시라는 것을 고려하면 흥미로웠다. 하지만 뭐, 70-80년대의 뮌헨은 프레디 머큐리가 자주 시간을 보낸 곳이었고, 게이 클럽과 드랙퀸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는 다양한 하위문화가 발전하기 마련이다. 물론 모두가 이런 모습의 뮌헨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벌거벗은 몸은 하느님이 우리를 창조한 그대로라는 의견의 가톨릭 신자가 있는 한편, 공공장소에서 예기치 않게 다른 사람들의 벗은 몸을 보는 것에 불쾌감을 느낀 사람도 많았다. 나체주의 옹호자들은 법정에 서게 되는 일이 많았고, 펠트모힝어 호수에서 한 나체주의자가 총에 맞은 일도 있었다.


2023년 6월부터 뮌헨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수영을 할 때 성별에 관련 없이 모든 사람은 상의를 탈의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 부여를 위한 조치로, 시대에 맞는 변화라며 큰 환영을 받았다. 몇십 년 전처럼 야외 어디에서나 옷을 벗고 다닐 수는 없다. FKK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거나, 암묵적으로(!) 동의된 특정 지역에서만 나체문화를 즐길 수 있다. 이에 2010년대부터는 뮌헨에 나체주의자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 섞인 칼럼을 종종 볼 수도 있었다.


최근 우연히  만난 한 독일 사람과 FKK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산업화와 몰개성화 등에 대항한 움직임으로서의 나체주의에 큰 애정을 느끼는 사람으로, 지금은 점점 벗은 신체가 성적대상화가 되어가고 있고, 심지어는 값이 매겨지곤 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사우나나 호수 일광욕은 노년층이나 즐기는 문화라는 이미지가 굳어졌고, 자연과 더욱 가까이하고자 했던 운동의 본거지였던 독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점점 실내로 들어가고, 컴퓨터 앞에서 온종일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씁쓸하다 했다. 내 기준에는 그래도 FKK 구역이 있고, 서로의 벗은 몸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는 사우나와 온천이 많으며, 신발을 신지 않고 밖을 돌아다니는 젊은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일이 꽤 자연친화적인 곳이라고 느껴지는데 말이다. 독일의 나체문화가 그의 우려대로 점점 줄어들지, 이대로 유지되거나 언젠가 재부흥기를 맞을지 모르겠다. 건강을 위해서든, 해방이나 자연으로의 회귀에 동의하든, 거부감이 없다면 번쯤은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몸으로' 독일의 FKK 문화를 체득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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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단어

nackt 벌거벗은


https://www.spektrum.de/news/geschichte-der-freikoerperkultur-die-nackte-wahrheit/1844980

https://www.abendzeitung-muenchen.de/muenchen/muenchen-nackerten-paradies-aus-tradition-art-472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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