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필하모니
이번 총선 사전투표 기간, 대파가 정치적 표현물로 간주되어 반입 불가라는 소식이 화제였다. 공직선거법 제166조 3항 "완장·흉장 등 착용, 기타의 방법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표지를 할 수 없다"를 근거로 한 결정이라고 한다. 투표소에 등장한 모든 대파가 실제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지야 모르지만,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 대파를 들고 간 사람들도 있기는 할 것이다. 한국처럼 선거와 관련되지는 않았지만, 10년 전 독일 함부르크에서도 일상용품이 정치적 메시지가 된 적이 있다. 바로 화장실 변기를 청소할 때 쓰는 변기솔이다.
함부르크의 상징과도 같아진 엘프필하모니 콘서트 홀은 원래 항구에 있던 창고에 철제 구조물을 올려 만든 형태다. 웅장하고 멋진 외관과 뛰어난 음향과는 별개로 건물 자체가 완공되기까지는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공사가 중지되고 재개되고 하면서 완공에 계획보다 7년 이상의 시간이 더 걸렸다. 시공 난이도의 과소평가와 잘못된 건축적 판단이 쌓여 비용은 계속 늘어났다. 2013년 국회 조사위원회 최종 보고서에서는 초기 단계 3개월 동안 비용이 2,870만 유로에서 6,530만 유로로 오른 것은 철저히 무능력에 때문이라며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비용은 7,700만 유로에서 7억 8,900만 유로, 한화로 1조가 육박하는 규모가 되었고 함부르크 시민들은 근 10년 동안 완공되지 않는 공사장을 바라봐야 했다.
다른 문제는 특히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과시성 소비였다. 한 독일 신문은 엘프필하모니 건설 현장이 과대망상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디자인 샘플로 변기솔 291.97유로, 핸드타월 디스펜서 957유로, 화장지 롤 홀더 651.06유로, 쓰레기통 273.95유로 등을 썼다는 내역이 공개된 후, 한화로 40만 원이 넘는 변기솔에 대한 풍자가 시작되었다. 온라인 밈 활동 역시 활발해졌는데, 함부르크의 유명 컬트 축구 클럽인 장트파울리의 팬들은 해골과 뼈로 이루어진 로고의 뼈 부분을 변기솔로 바꾸었고, 스타워즈의 제다이가 광선검 대신 변기솔을 들고 있는 사진 등도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엘프필하모닉 건설과 관련된 시위를 우려해 건설현장을 위험 지역 Gefahrengebiet, 즉 경찰이 시민을 수색하고 추방시킬 수 있는 구역을 지정한 것 역시 사람들의 큰 반감을 샀다.
2014년 1월, 독일의 9시 뉴스와도 같은 타게스샤우에서 경찰이 '위험 지역'에서 한 행인을 두 팔을 올리게 해 수색하고, 그의 허리띠에 붙어 있던 변기솔을 잠재적 무기라고 간주하며 압수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자, 그 몇 초 되지 않는 시간에 변기솔은 즉 항의의 아이콘이 되었다. 한국에서 선관위가 대파를 정치적 표현물로 간주한다는 공식 발표가 오히려 그 움직임을 촉발시킨 것과 비슷하다. 시위자들은 변기솔을 들고 브러시 몹 (Brushmob)이라는 평화적 시위를 했는데, 이 덕분에 약국과 드럭스토어들에서 변기솔이 품절되었고, 몇몇 가게들은 시위날을 위해 변기솔 할인 행사를 했다. 이후 엘프필하모니 측은 291.97유로는 샘플이었을 뿐이며 실제 구입한 변기솔은 41.95유로라고 했지만, 사실 이 한 물건의 가격만이 시민들의 불만을 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함부르크에서는 몇 년 뒤 또 다른 '브러시' 시위가 시작된다. G20 회담과 관련해 또다시 함부르크 무역전시장 등 일대가 '위험 지대'가 되자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이었다. 한 청년이 변기솔에 G20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적은 종이를 달았고, 누군가 그의 사진을 찍자 그는 사진을 찍지 말라며 실랑이가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이 청년은 사진을 찍은 사람을 변기솔로 때렸고, 그는 가택 수색과 형사 소송을 당한다. 심각한 선동적인 치안 위반, 심각한 신체적 상해 및 강압이 이유였다. 이 청년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변기솔은 평화적 시위의 상징"이며, 기물을 파손하기에는 부적합한 물건이라 설명했다. 아마도 그리하여, G20 반대 시위에서는 변기솔보다 더 작고 덜 위협적인 칫솔이 상징이 되었다. 시위 대변인 에밀리 라커는 "경찰이 우리를 체포하면 우리는 칫솔을 갖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파와 변기솔. 둘 다 일상생활에 밀접한 것들이지만 상황적 맥락에서 정치적 표현물이나 잠재적 무기로 간주되었다. 함부르크에서 몇 년 뒤 변기솔이 다시 등장하고, 칫솔로 진화(?)를 한 것처럼, 한국의 대파 역시 몇 년이 지나도 특정 이야기나 메시지를 담은 물건이 될까?
독일어 단어
die Klobürste 변기솔
https://fink.hamburg/2017/05/die-zahnbuerste-ist-die-neue-klobuerste/
https://taz.de/G20-Prozesse/!5566286/
https://www.zeit.de/hamburg/stadtleben/2017-05/elbvertiefung-19-05-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