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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g Apr 11. 2024

출신을 숨기는 독일 브랜드들

패션으로 유명한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브랜드들은 이름만 들어도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의 이국적인 생김새와 발음이 그 나라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것 같다. 이러한 국가 이미지의 수혜를 받고자 이들 언어로 브랜드명을 짓는 타국의 브랜드들도 많으니 말이다. 반면 몇몇 독일 패션 회사들은 브랜드의 첫인상에서 독일어의 흔적을 희미하게 만들려 하는 듯하다. 이런 패션 브랜드들은 국적을 가늠할 수 없거나, 독일과의 연관성이 곧바로 생각나지 않는 이름을 갖고 있다.


처음으로 국제 패션 무대에서 독일을 눈에 띄게 만들어 준 질 샌더는 함부르크 출신 디자이너 하이데마리 질리네 잔더 (Heidemarie Jiline Sander)의 브랜드이다. 유럽 최초의 청바지 이야기에서 다루었던 무스탕(Mustang)은 소유주와 동명이었던 이전 회사명을 미국 느낌이 나는 단어로 바꾸었다. 바지로 유명한 또 다른 독일 패션 회사 Leinweber는 바지를 뜻하는 라틴어 "Braka"와 당시 그들이 생산하던 영국 회사의 이름인 "Daks"를 더해 BRAX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살아남지 못했지만 깔끔한 오피스룩을 제공했던 Strenesse는 Strehle KG라는 회사명에 프랑스어로 젊음을 뜻하는 "Jeunesse"를 더한 결과다. 그룹 산하 여러 브랜드를 갖고 있는 Gerry Weber는 창립자의 이름인 게르하르트 베버 (Gerhard Weber)를 조금 더 국제적 느낌이 나게 바꾸었고, 함부르크에서 의류를 유통하던 Henke & Co는 그들이 판매하던 첫 코듀로이 바지 모델명인 Tom에 재단사를 의미하는 Tailor를 더해 Tom Tailor로 이름을 바꾸었다. 오이겐 베츠너(Eugen Bezner)는 그리스의 올림푸스를 뜻하는 Olymp를, 베른트 프라이어(Bernd Freier)는 영국 소설 주인공 올리버 트위스트의 이름을 따와 s.Oliver를, 테오 내겔라인(Theo Nägelein)은 가상의 이탈리아 이름인 Carlo Colucci를, Be & Ju Ilzhöfer는 Ana Alcazar를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했다. 데님 계의 파타고니아라고 불리는 쾰른 브랜드 Armedangels, 역사는 짧지만 주목을 받고 있는 뮌헨 브랜드 A Kind of Guise 등은 시작부터 영어로 브랜드 이름을 지었다. 최근 공정무역이나 유기농 패션 등으로 부상하고 있는 다양한 뮌헨의 패션 및 잡화 브랜드 중 독일어는 거의 없으며, 7월에 열릴 25SS 베를린 패션위크 스케줄표를 봐도 많은 브랜드가 '국제적인 이름'을 갖고 있다.


다양한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전 세계에 문이 열려 있는 지금, 더 넓은 시장과 잠재 고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국제적인 브랜드 이름 작명은 당연한 흐름일 수 있다. 특정 문화권에서 부정적인 어감을 갖지는 않는지,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발음할 수 있는지 등 보는 눈이 많아진 만큼 고려해야 할 점도 늘어났을 테다. 다만 많은 독일 패션 브랜드들은 당시 창립자의 이름이나 모국어 단어를 사용한 많은 서구 브랜드들과 달리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영어 단어, 원하는 이미지를 가진 나라의 언어, 또는 의미를 부여해 새로 만들어 낸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모든 독일 브랜드가 독일어를 탈피하거나 자신의 본명을 숨기는 건 아니다. 이미 유명한 휴고 보스 (Hugo Ferdinand Boss)나 아디다스 (Adolf Dassler), Joop! 의 Wolfgang Joop, 그리고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살고 프랑스어를 말하며 살았지만 이견 없는 독일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 중 하나인 칼 라거펠트 (Karl Otto Lagerfeld) 등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들의 이름에 모두 독일어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움라우트 모음 (ä, ö, ü)이나 독일어 자음 (ß)이 없다는 공통점은 우연일까? 이들이 독일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은 다른 언어권 사람들의 발음이 덕분에 쉬워서일까? 아니면 패션 브랜드를 전개하는 데 독일과의 연결고리가 희미한 것이 브랜드 이미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까?


반면 최근 서울에 방문할 때마다 한국에서는 독일어 단어를 사용한 장소나 브랜드 이름을 종종 보았다. 독일적 이미지를 얻기 위함인지, 단순히 생소함과 이국적인 느낌을 위한 외국어의 사용인지, 또는 창립자와 독일 과 관련된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예상치 못한 나의 고향에서 독일어를 불쑥 마주할 때면 반가워서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언젠가는 독일 패션 브랜드 이름으로 한국어를 볼 날도 올까?


독일어 단어

Modemarken 패션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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