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인의 소(牛)
“그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산스크리트어로 전쟁이 무엇이고, 그 말이 원래 어떤 의미인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며 다른 학자에게 가려는 웨버 대령에게 루이스는 말한다. 외계 생명체와 조우한 인류. 하지만 외계의 메시지를 해독할 수 없다. 우호의 표현일지, 침략의 위협일지… 위기의 인류는 그 메시지를 해독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웨버 대령은 언어학자인 루이스를 찾아가지만 루이스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 대령은 기회는 한 번 뿐이라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한다. ‘인도’적 관점에서 봤다면 주의 깊게 보았을 영화 <컨택트(Arrival, 2016)>의 한 장면이다.
인더스 문명의 발생 이후 인도에도 그러한 외계와의 조우가 있었다. 아리아인(기원전 2천 년 추정)이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인도의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자리 잡는다. 아리아인이라면 히틀러와 나치가 떠오르는데, 그리스 로마로부터 출발한 기존의 패권주의에서 탈피해 새로운 뿌리를 찾으려던 나치는 많은 것을 왜곡했다. 원래 아리아인은 현재 인도, 유럽, 이란에 거주하며 언어학적으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사람들로, 그 기원에 관한 이론은 다양하고 인종적 가지 또한 여러 갈래로 뻗는다. 관련 지역의 종족과 언어적 유사성을 볼 때 유럽과 페르시아, 인도가 연결되니 인종적인 순혈주의를 논하는 건 애초 우스운 일이다.
한편 다수의 원주민(드라비다)을 피지배민으로 삼고 남쪽으로 밀어내며 북쪽에 정착했다는 점에서 수렵 문화의 아리아인이 농경문화에 정착하고자 인도를 대거 침입했다고도 여기는데, 꼭 그렇다고 볼 순 없다. 인더스 강을 넘어온 건 남성 위주의 소수 아리아인이었고, 당시 수렵과 채집이 농경문화보다 월등한 생산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미 다른 아리아인이 기존에 정착한 땅을 또 다른 아리아인들이 차지한 것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분명한 점은 둘 간의 교류는 지금에 이르는 인도의 보편적 문화를 잉태했고, 그 충돌의 여파가 지금에 이르는 인도 사회의 인종, 언어, 문화 등의 다양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소수 아리아인이 다수의 원주민을 지배할 수 있었던 데엔 그들에게 마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주민에 비해 월등한 기동력으로 전투에서 우위를 점했을 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칠 신문물이 전파된 것이었다. 인도에서 ‘차크라’란 낱말이 곧 마차 바퀴와 원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종교 철학적 용어로 쓰일 뿐 아니라, 현재 인도의 국기와 국장, 아소카 왕의 석주 등 현존하는 여러 문화유산에서 발견되는 인도의 상징이 되어 있다. 불교에서 전륜성왕이란 표현 역시 이와 맥락이 닿아있다.
아리아인의 정착과 교류는 인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토착 신앙에 접목한 종교 문화의 정착과 발달에 기여하고, 계급 문화(카스트)를 정착시키며 불교의 달마(다르마, 법) 또한 이때 전해진다. 종교를 중심으로 한 계급 문화는 소수의 이주민이 지배층으로서 위계질서를 세우고 다수의 토착민에게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밖에도 현재 인도를 상징하는 문화적 토양의 상당 부분이 이 시점에 형성되었다. 가령, ‘정착’과 ‘이동’ 다시 ‘정착’을 지속해온 아리아인의 문화에서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요가’인데, 인도 외적인 영향을 많이 받은 현재의 ‘요가’는 오늘날 마치 건강 체조처럼 여겨지나, 원래는 이동을 포함 힘을 쓰는 모든 물리적 행위를 뜻했다. 또한 인도의 힌두교에서 소를 우상시하는 문화 또한 이때 비롯된 것인데, 고대 농경 사회의 주요 노동력이었던 소는 귀했고, 사제 계급의 제사 의식 및 새로운 정착민의 종교 문화 등이 결합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한편, 언어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리아인의 ‘아리아’라는 낱말이 곧 아리안계 인도 고어인 산스크리트어(범어)의 ‘아리야’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고귀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를 안다는 건 곧 권력이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를 쓰고 배우며 해석하는 일은 사제 계급 등 특권 계급만이 취할 수 있는 힘이었다. 아리아인이 곧 사제 계급이고, 세세한 규칙의 제사에 참석하고 진행할 수 있는 건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배 계급이 언어와 종교 지식을 독점하여 장악하면, 하위 계급은 구전으로만 전해 들으며 종속되었다. 이로써 종교와 지배층의 권위, 계급으로 정의된 사회 질서는 공고히 유지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인도에선 구전 문학이 발달했다. 기록을 기피한 것이 아니라 고유한 지식을 쉽게 공유하지 않았던 것이다. 구전 문학의 발달은 인도 사람들을 거침없는 이야기꾼으로 만들었는데, 엄청나게 긴 텍스트를 일단 외우고 난 뒤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도 인도인의 놀라운 암기력에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또한 인도 사람들은 그 말에 리듬이 넘쳐 거리낌이 없는데, 그들과 대화하다 보면 간혹 그 진의가 불분명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현란한 말의 기술은 그 유래가 깊다.
산스크리트어는 이제 일상에 사용되는 언어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데, 경전을 연구하고 종교, 역사,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의 언어라는 점은 아리아인과의 교류가 인도에 미친 영향을 짐작케 한다. 또한 이에 상응한 토착민의 언어가 현재에 이르며 다양한 언어로 발전하는데, 이로써 현재 인도의 언어가 왜 그토록 다양한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실제 기차를 타고 인도의 지방으로 내려가다 보면 역마다 문자의 모양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언어의 태생 자체가 다르기 때문인데, 인도엔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통용되는 지정 언어는 있을지언정 국어는 없는 셈이다(헌법상 지정 언어 22개, 10만 인구 사용 언어 191개).
“산스크리트어로 전쟁은 가비스티(Gavisti), 논쟁을 뜻한다고 하더군요,”
다시 루이스를 찾아온 웨버 대령이 말한다. 하지만 루이스는 답이 없고, 뭔가 틀렸다는 걸 깨달은 웨버가 되묻는다.
“그럼 진짜 의미는 뭐죠?”
루이스는 그제야 기다렸다는 듯 답한다.
“더 많은 ‘소’를 바란다는 뜻이죠.”
그것이 소를 숭배하는 문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