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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Jun 03. 2024

너는 나의 상점

프롤로그


프롤로그. 너는 나의 상점 / 일러스트 


  너는 나의 상점이었다. 멋쩍은 표정으로 문을 밀고 들어가 손 닿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간절히 원하던 무언가와 마주했지만, 한 걸음 더 다가가 움켜잡지 못하고, 빙빙 주위를 맴돌다가 끝내 발걸음을 돌렸던 상점이다.

  뒤늦게 다시 찾아가 보지만, 상점은 이미 떠났고, 텅 빈 건물의 문만 굳게 잠겨 있다. 자초한 일이다. 이제 어렴풋한 상점의 기억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야 한다.

  “그건 네게 너무 해로울 거야.”

  바닥에 흩어져 나부끼는 전단지가 그만 잊으라는 듯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괜찮다. 해로워야 마땅하다. 쉽게 잊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고통이다.

  “미련하구나?”

  그래, 미련未練하다 . 더운 날 선풍기가 덜덜거리고 빈 콜라병에 이슬이 맺히듯 미련이 남는다. 다만 지난 일에 미련을 두는 것이 나라면, 미련은 미련한 대로 벗 삼는 것이 나의 삶일 듯하다. 옳지, 이별이 일상인 사람에게는 이별한 채 살아가는 요령이 쌓인다. 쿠폰처럼, 미련과 둔감을 함께 적립한다.

  물론 좀처럼 둔감할 수 없을 때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계기로 어느 날 불쑥 나를 멈춰 세워 드르륵 문이 열리는, 그런 옛 상점과 재회한다면.

  그때 나는 잠시 상점의 쇼윈도를 바라보며 너를 곱씹어 볼 것 같다. 아무리 떠올려도 바래지 않을 너와의 추억을. 그리고 말할 것이다. 그때 너는 나의 소중한 상점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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