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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dolee May 23. 2018

나에게 어떻게,
달리냐고 물었다.

달리지 않기엔 여전히 우리는 젊다 (2/6)


 러닝에는 규칙이 없다. 다른 스포츠나 게임과 달리 지켜야 할 규칙이 없기에 배울 필요도 없고, 이러한 장점은 러닝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추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년 전 러닝을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정말 내키는 대로 달렸다. 오늘은 어디를, 얼마나, 어느 속도로 달릴지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그냥 뛸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뛰었고, 그러다 힘들면 주변 풍경을 보며 쉬었다. 이렇게 뛰고, 또 쉬고를 반복하는 게 내 러닝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체력을 안배하지 않고 달렸던 과거의 나에게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잘' 달리는 방법은 정해져 있을지 몰라도, '그냥' 달리는 방법은 정해진 것이 없으니까.



평소에 어떻게 뛰세요?


 지금은 바꾸었지만, 한동안 나의 런스타그램(러닝+인스타그램) 아이디는 '5kdean'이었다. 5km를 의미하는 '5k', 수평적인 문화를 지향하는 회사에서 아주 잠깐 일했을 때 지었던 내 영어 이름 'dean'을 붙여서 만든 아이디였다. 아이디에 '5k'를 넣었던 이유는 정말 단순했는데, 당시 내가 달릴 수 있는 체력의 한계가 정확히 5km였기 때문이다. 늘 4km만 뛰기에는 약간 아쉬웠고, 그렇다고 오버해서 6km를 뛰자니 왠지 모르게 무리하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5'라는 숫자는 묘한 안정감까지 주는 것 같아 그 이후로 나의 러닝 목표는 5km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뛰는 것이 아니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5km를 가뿐히 뛰는 것을 좋아한다.


저녁 늦게 뚝섬한강공원에서 5km를 뛰면 볼 수 있는 풍경


 이렇게 거리를 목표로 잡고 러닝을 하다 보면 내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오는데, 나에게 그 첫 순간은 5km를 쉬지 않고 달리던 날이 아닐까 싶다. 머리가 조금 커지고 나서 알았지만, 5km는 러너들 사이에서 그렇게 긴 거리가 아니었다. 대회 종목만 살펴봐도 가장 짧은 거리가 10km인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초보 러너였던 나에게 5km는 중간에 쉬지 않고 달리기엔 너무나 길었다. 생각해보자. 살면서 30분 가까이 쉬지 않고 뛰었던 경험이 있는가? 적어도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없었다.


 신기한 것이 5km를 목표로 달리면 귀신같이 3km를 돌파할 때부터 숨이 가빠오는데, 그때부터 내적갈등이 시작된다. 쉬지 않고 헉헉거리며 4km 정도만 뛰느냐, 아니면 잠깐 포토 타임을 가지며 쉬었다가 이어서 뛰느냐. 25년 넘게 끈기없이 살아온 나는 늘 후자를 택했다. 그러다 문득 늘 쉬던 곳에서 턴을 할 때 '왠지 될 것 같은데?'라는 근자감이 드는 날이 있었다. 그날 페이스가 평소보다 느렸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5km를 쉬지 않고 뛰었고, 지금껏 내가 뛰었던 길을 허투루 달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처음으로 쉬지 않고 5km 달성! (2017. 6. 11. 일, @뚝섬한강공원, 5.36km, 5' 23", 28:52)


 어릴 적부터 거리나 공원에서 달리는 사람을 볼 때마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저렇게 열심히 뛸까?' 늘 궁금했지만 달리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니 마땅한 답변을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조금이나마 답할 자격은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달릴 때 무슨 생각을 하면서 뛰는지 되짚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눈을 감고 떠올려보니 나는 의외로 머리를 텅텅 비우고 달리고 있었다.


내가 달리며 하는 생각

어디서 턴하지? - 3%

몇 km나 더 뛰어야 할까? - 10%

지금 이 페이스로 계속 뛰어야 할 텐데. - 22%

(♬) - 65%


 적고 보니 달릴 때의 내 머릿속은 온통 러닝과 관련된 생각뿐인 것 같다. 이것은 곧 내가 러닝을 좋아하는 이유와 직결되는데, 아무리 고민이 많은 날에도 러닝화를 신으면 잠깐이나마 이 잡념들을 떨칠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저 65%다. 최고의 러닝메이트는 음악이라고 할 정도로 나는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페이스를 유지할 때 신나고 빠른 템포의 음악은 큰 도움을 주는데, 이쯤 되면 내 러닝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아티스트들이 최고의 페이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최고의 페이서는 레드벨벳. 빠 빠 빨간 맛!


 당연히 사람마다 뛰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러닝의 목표를 7km짜리 거리로 잡을 수도 있고, 5분 30초짜리 페이스로 잡을 수도 있다. 아니면 '오늘은 25분 정도 뛰어야지!' 하며 시간을 목표로 설정할 수도 있다. 나는 음악과 함께 달리면 더욱 힘을 내지만, 반대로 음악을 들으면 페이스가 느려지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뛰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은 곧 러너가 자신만의 '달리는 재미'를 개척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평소 같은 거리를 달려도 어제보다 조금 더 빠르게 달리는 재미, 음악을 흥얼거리며 업힐(오르막)을 달리는 재미, 트랙을 돌며 매 바퀴 기록을 세우는 재미까지. 어제 죽도록 달렸어도 오늘 또 달리고 싶은 이유는 아마 어제는 느끼지 못한 재미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지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121번의 러닝으로 643.3km를 달렸지만, 내일의 러닝이 내게 가져다줄 재미는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기에 잊지 말자. 달리지 않기엔 여전히 우리는 젊다.




달리지 않기엔 여전히 우리는 젊다

나에게 왜, 달리냐고 물었다.

나에게 어떻게, 달리냐고 물었다. (현재글)

나에게 무엇을, 달리냐고 물었다.

나에게 어디서, 달리냐고 물었다.

나에게 언제, 달리냐고 물었다.

나에게 누가, 달리냐고 물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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