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열정이 살아나다
혹시 일본 기치조지의 '혼토노 혼다나'나 진보초의 '패시지(Passage)'라는 공간을 알고 있는가? 2025년 11월 27일, 강화도 한옥스테이 '편안집'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처음 들어본 단어였다. 일본에서 이미 여러 개가 운영 중인데, 책장을 임대해 주는 서점이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반응은 “이런 사업 모델도 있구나” 정도에 그쳤다.
이야기는 이어졌는데, 최근 한국에도 상륙했다는 것이다. 목포 구도심 비어있던 미곡 창고에 문을 열었는데, 최근 같은 이름의 서점이 강화도에도 생겼고 광주에서도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라는 소식이었다. 목포에서 시작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강화도에 지점을 내고 광주에서도 개업을 한다고? 당장 강화도에 있는 공유서점을 찾았고, 며칠 후에는 목포까지 내려갔다.
목포에서 운 좋게 서점 주인인 조반장님을 만났다. 성품이 좋으신 그분은 강화도 공유서점 컨설팅을 하셨고, 현재 광주 공유서점의 컨설팅까지 맡고 계셨다.
강화도와 목포는 비슷한 구조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책장의 사이즈만 달랐다. 각 책장을 연 단위로 임대하고, 책장지기들은 자신이 소장하던 책을 헌 책으로 팔 수 있었다. 각종 수공예품이나 굿즈들도 입점해 있었고, 새 책을 팔고 싶은 사람은 서점이 구매를 대행해 주는 방식이었다.
가장 궁금했던 임대료 구조를 여쭤보니 비결은 명확했다. 목포는 임대료가 거의 없는 곳이었고, 강화도는 매우 저렴했으며, 광주는 건물주와 서점주가 동일했다. 즉, 이 모델은 '임대료의 부담이 없는 상태' 혹은 '위험이 완전히 헤지(Hedge)된 상태'에서만 지속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다녀오고 나니, 임대료 부담 때문에 서울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이성과 달리 공유서점을 서울에서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차올랐다. 우리 편안집 팀에서도 한 분을 제외한 나를 포함한 세 명은 "해보자!"며 파이팅을 외쳤다.(나머지 한 분은 강화도 거주자여서 입점자로 포지션 변경)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서점’이란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들 책을 워낙 좋아해서, 집에 쌓여가는 책만 가져다 놓아도 서점 책장을 다 채울 판이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책들에 둘러싸여 일하면 힘든 것도 다 극복가능할 거라는 긍정적인 환상에 들떴다.
계산기를 눌러보니 책장 100개만 있으면 임대료는 해결될 것 같았다. “공과금은 우리가 나눠 내고, 우리는 무임금으로라도 열심히 일하자!” 한참 전인 20대에 있었던 열정이 우리 안에서 다시 불타올랐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태도였다. 돈을 쓰며 일을 하는...그렇지만 현실의 벽은 임대료와 공과금, 그리고 노동에 대한 대가의 부재에 지쳐서 손털고 나오게 되는 것이지...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제미나이가 업그레이드되었다. 제미나이 이미지생성 모델인 나노바나나가 생성한 이미지는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소름 끼칠 정도로 현실적인 이미지를 보면서 가상과 실제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시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드디어 진짜 사람인 내가 '실존'이 있는 '리얼 휴먼'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구나!
어쩌면 바로 이때! 나는 공유서점을 해야할 거 같았다. 내가 생각해낸 실존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간을 켜켜이 쌓는 것' 뿐이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중고책 또는 내 책장의 책에 대한 가치가 완전하게 달라졌다. 나의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은 단순한 중고책이 아니었다. 그 책은 나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실존증명의 상징이었다. ‘그 상징에 나의 서사를 더해 공유서점에 꽂아 놓는다면’ 여기까지 사고가 확장되자 나는 더 이상 공유서점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이 일을 해야만 했다.
당장 공간부터 알아보자! 퇴근 후,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성북천 근처를 눈에 쌍심지를 켜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