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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ul 05. 2022

나만 빼고 다 잘 사는 것 같다.

요즘은 누워서도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대화 한번 나눈 적 없는 사람의 일상까지 들어갈 수 있다. 이웃집 소식은 모르면서 존재도 모르던 이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본다는 것은 이상하지만 자유로운 왕래에 따라오는 장점도 많다. 문제는 궁금하지 않은 소식까지 모두 알게 된다는 점이다. 지나온 사람의 결혼 소식이나 멀어진 동기의 일상은 궁금하지 않았다. 나를 불편하게 하던 이의 소식은 모르는 채 살고 싶다. 내가 조금 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다면 축하해주고 잘 살아가길 빌어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아쉽게도 지금의 나는 덜 익은 인간이라 떫은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일상 속에 불쑥 침범해온 불청객의 등장에 씁쓸함을 품은 내 모습이 싫다. 영상과 사진 속의 사람들은 행복하고 즐거워만 보이는데 어두운 화면에 비친 얼굴은 너무나 못나 보인다. 화면 속에선 밝게 빛나는 것이 가득하지만 매일 반짝이는 순간을 즐기며 살지 못하는 나만 빼고 다들 잘 지내는 것 같다.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며 살고 싶지 않은데, 견물생심이라고 자주 보고 있자니 없던 욕심이 생기고 상대적 박탈감마저 피어난다. 가진 것에 불편함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것을 보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사람의 특징인지 나의 욕심인지 모르겠다.

 

 평생을 뚜벅이로 살아왔으면서 바퀴 있는 것을 보며 자전거, 바이크, 경차, 승용차, suv까지 욕심이 눈덩이처럼 불어 간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 화려한 색감의 여행지로 장식해둔 피드를 보며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실의 나는 더 보잘것없는 듯 느껴진다. 시간 날 때마다 별생각 없이 들여다보면서 불특정 존재를 질투하는 마음도 모자라 가지지 못한 스스로 경시하는 모습을 알게 된 후로는 SNS를 지워야 했다. 매 순간 쏟아지는 시청각을 자극하는 재미와 이슈에서 멀어졌지만 작은 고요함을 얻었다.


 드러내지 않는 것을 겸손이라 여기던 시대를 지나서 적극적인 자기 PR이 필요한 때 살고 있다. 개인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과 장점을 담아내는 동시에 TMI를 품고 있다. 그렇기에 SNS는 어떤 방향으로 쓰느냐에 따라 손익이 달라진다. 누군가에겐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가 되고, 다른 이에겐 시간을 잡아먹는 대중매체일 뿐이다. 적절하게 이용한다면 명함처럼 나를 나타낼 수 있는 도구가 되어준다.


 다른 이의 빛나는 순간을 보며 괜히 움츠러들 필요 없다. 빛을 내기까지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하나의 컷을 보고서 추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명확한 기준도 없이 타인과 삶을 비교하는 시간을 가지고서야 나의 미련함을 알았다. '나만 빼고'라는 피해의식은 내 안에서 만들어진 찌꺼기 같은 존재였다. 누구도 하지 않는 판단을 하며 스스로를 갉아낸다. 내가 만들어낸 프레임에 스스로 가둘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나를 좀 놓아주자.


어쩌면 다들 스스로가 만든 새장에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보면 꽤 많은 이가 '나만 이런 것 같다.'며 힘겨워한다. 모두 각자의 몫을 감당하기 위해 싸우며 살아간다. 나만 이런 게 아니라 다들 비슷하지만 다른 상황 속에 서로를 부러워한다. 가지지 못한 것을 채우고 싶어서 가진 것을 보지 못한다.


각자의 프레임에서 나와 조금 더 편해지길 바란다.  행복한 끝만을 보며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자주 웃을 수 있는 하루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잘 사는 것의 기준도 저마다 다르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아직 살아있기에 기회가 있다. 남들을 따라 하고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보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날을 살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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