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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Mar 04. 2022

내일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

긴 하루를 마치고 이불속에 들어올 때는 왜 이렇게 몸이 무거운지 모른다. 평소와 다른 중력이 나를 무겁게 눌러내리는 느낌이다.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내고 아무것도 없는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괜히 볼을 누르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려본다. 어떠한 감정은 없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가만히 돌아가는 냉장고의 모터 소리만 작게 들려올 뿐 방안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어둠으로 채워진 공간으로 창문을 통해 비춰오는 가로등 불빛이 퍼지면 희미한 방안의 모습이 나타난다.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의자와  앞에 있는 책상 쌓인 물건 흐릿하게 구분될 쯤엔  꺼진 방안을 걸어 다닐 수도 있다.  안에서 나는 무거운 몸을  늘어뜨리고 눈을 감아도 멈추지 않는 생각을 따라 움직인다. 전원을 끄는 것처럼 생각도 스위치를 눌러서 멈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시간에는 오늘 있던 일부터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과 해야 할 것을 고민하기도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리하기도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밤은 오고 이불속에 누우면 다음날에 대한 물음이 으레 찾아온다.

 

소풍 가기 전날처럼 내일이 기다려지는 밤도 있었는데, 최근 몇 년간은 기대보단 막연한 두려움으로 뒤척일 때가 많았다. '내일은 뭐하지', '앞으로는 어떻게 하지', '무엇을 해야 하지'

답을 해결하지 못한 채 쌓여가는 의문 아래서 자꾸만 숨이 막혀온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발버둥을 쳐봐도 거대한 은하 안에 작은 소행성중 하나일 뿐이다. 몇 달간 준비해온 것이 모래 위로 부서지는 파도처럼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때면 내가 무너지고 쏟아지는 기분이다. 다시 추스르고 움직이기까지는 며칠, 몇 주, 길게는 몇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걱정으로 방안을 가득 채우는 날이 쌓이면 문득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언제까지 이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물어도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다.   없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꺼진 천장만 공허하게 바라볼 뿐이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렇게 산다고 말한다. 모두가 이런 삶을 산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사는 걸까


끝없는 질문에 잠들 수 없는 밤이 오면 오늘 감은 눈을 뜨지 않길 바란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눈이 떠진다면 그날은 제발 조금 덜 아프길 바랄 뿐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나은 날이  거라는 것을 알려줬으면 한다.  말을 믿고  살아갈  있는 희망을 가질  있도록.


지금보다  불안했던 스무 살쯤엔 내일이 오는 것을 막고 싶은 날이 많았다. 죽고 싶지는 않지만 현실이  막히게 답답하고 도망가고 싶은 날의 연속이었다. 겨우  해가 지났을 뿐인데 성인이라는 이름표는 예상했던 것보다  무겁고 부담스러웠다. 같은 상황이라도  혼나고 책임져야 하는 무게가 달라졌다고 생각하니 눈물부터 나는 일이 많았다.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인  알았는데 모든 것이 서툴고 모르는  투성이었다.


막연히 다 잘하고 싶어 했던 서툰 나에게 돌아가서 말해줄 수는 없지만 '잘하고 있다'라고 전해주고 싶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나는 여전히 서툴지만 그때보다 더 살만하다고,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고 말이다. 그건 몇 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해줄 수도 있는 말인지도 모른다.


내일도 살아보자고, 지금보다 더 괜찮아질 거라고, 수고하는 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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