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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ul 15. 2022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겁니다.

 견디기 힘든 아픔이 느껴질 때면 차라리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모든 걸 다 집어던지고 도망가고 싶다. 차라리 죽고 싶단 말과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아픔을 표현하지만 사실 본심은 그게 아니다.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이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입으로는 살기 싫다 뱉으면서 아픔과 고통 속에선 살려달란 기도까지 나오는 걸 보면 분명 죽고 싶은 것이 아니다. 곧 죽을 것처럼 몸을 웅크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가쁜 호흡을 뱉을 때만큼 분명한 삶의 의지가 피어나는 순간이 또 있을까 싶다.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무작정 나가서 걷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집안을 청소했다. 책상 옆에 세워진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몇 년 지난 일기를 발견하고 펼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아프고 힘든 이유는 그 부분에 대해 진심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잘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기에 애타고 속상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에서 나를 건져내고 애쓰고 있다며 위로한다. 지나온 내가 지금의 나를 가만히 다독인다. 참았던 숨을 내쉬며 한참 동안 감정이 흐르는 대로 두고 바라보았다. 어깨를 들썩이며 가쁘게 헐떡이던 움직임이 잦아들고 모든 감정이 빠져나간 나만 남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힘이 빠져서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온 옅은 빛과 사람들의 말소리에 눈을 뜨면 어느새 아침이 밝아있다. 전깃줄 위로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고 하루를 시작하는 소란스러운 생기를 느끼며 눈을 깜빡거린다. 뻑뻑한 눈꺼풀과 눈가를 비비며 시간을 확인하면 일곱 시 언저리를 지나간다. 나의 기분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새로운 날이 밝아있고 하루가 주어진다. 눈을 뜨면서부터 한숨을 뱉어내지만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짐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기대될 것 없는 아침이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할 일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언제든 대체 가능한 부품과 같은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책임감이란 얄팍한 이유로 자리를 뜰 수가 없다. 고리를 끊는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음을 알기에 입술을 짓이기며 이곳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해야 할 일은 하면서도 목적을 잃은 몸짓은 무의미한 움직임이란 생각을 떨쳐내지 못해서 언제든 그만둘 마음을 하나의 사표처럼 품고 다녔다. 내가 나에게 너무 가까워져 있어서 멀리 보지 못하고 감정에 치우쳐있음을 알지 못했다.


 분명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지만 다시 설 수 있으려면 먼저 일어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아니, 어쩌면 의지는 도움받을 수 있지만 적어도 마음을 먹는 건 나의 몫이다. 아주 작은 마음이라도 좋다.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줄을 풀어버리는 것은 무기력한 나였다. 스스로가 만든 감옥을 벗어나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자.


나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때, 도움을 주려는 손도 뿌리치고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두라며 날을 세웠다. 뾰족한 나에게 도리어 상처를 받고 떠나는 이가 생길수록 두꺼운 가시를 만들었다. 혼자 모든 짐을 떠안으려 하며 힘겨워하면서도 덜어주려는 손길을 피해서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누군가 나를 여기서 꺼내 주길 바라는 동시에 건들지 않기를 원했다. 스스로 정확히 어떤 것을 원하는지 몰라서 모순적인 모습이었다.


혼자만으로 힘든 일은 누군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당사자가 보지 못한 부분을 알려주고 조금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데 도움을 받게 된다. 스스로 이기려 애쓰는 과정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있어야 무엇이든 잡고 나올 수 있다는 것과 도움을 받는 일도 용기가 있어야 함을 배우게 되었다. 지나갈 순간의 감정에 속지 말자.


 죽고 싶다 말하지만 정작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살고 싶은 간절함이 튀어나온다. 죽음과 고통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피하고 싶은 일이다. 오늘 감은 눈이 뜨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밤이 잦아져도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 하루를 더 살아갈 이유가 생긴다. 가볍게 건넨 말 한마디에 온 마음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모든 걸 놓고 싶은 순간에 잡아준 손이 단단해서 일어설 용기를 얻기도 한다.


물론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고꾸라질 수도 있다.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나를 넘어뜨릴 걸림돌을 만나게 되고 포기하고 싶어 질 때도 다시 오게 될 것이다. 갈라진 마음의 틈에서 새어 나온 두려움은 나를 감정에 젖게 하고 짙어지게 만든다. 발밑에서 자라난 어두운 마음은 빛을 만날 때마다 반대편으로 도망치듯 숨는다. 이런 마음이 사라지기를 바라지만 기회만 되면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한동안 괜찮다 싶더니 빈틈을 보일 때마다 발목을 잡고 넘어뜨려 나를 집어삼키려 달려든다.


 분명한 점은 살고 싶다는 것이다. 작은 바람에도 나부끼지만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괜찮을 거라고  지나간다는 말로 쉽게 위로할  없지만 살아있어야 기회가 있음은 분명하다. 힘든 순간을 버티고 있을 어떤 이에게는  말도 부담스러울까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또다시 힘들어질 나를 받아줄 안전망을 설치해두기 위함이다. 나는 나와 당신이, 우리가  살았으면 좋겠다. 고통의 순간이 온몸을 부숴놓는  같지만 분명 나의 발전을 위한 아픔일 것을 믿는다. 알처럼 작은 나를 깨뜨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일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지금  순간도 지나간다. 스쳐갈 시간에 중심을 지켜가자.  단단하고 깊게 뿌리를 내릴  있기를 바란다. 바람에 나부낄지언정 꺾이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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