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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Feb 11. 2022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인데요

아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알람 소리에 간신히 눈은 떴지만 이불 밖으로 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세워놓은 일정과 계획이 있음에도 몸을 일으킬 생각도 못하고 누워있을 뿐이다. 멍하니 방안의 공기만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잠들지도 못하지만 일어나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할 일이 쌓여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손을 뻗어 폰을 찾아 가져오면 밀린 연락은 미뤄두고 영상이나 sns를 뒤적거린다. 잠시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무 생각 없이 뒤적이다 보면 한두 시간은 가볍게 지나간다. 오래 뒤적거릴수록 뒤따르는 허무함과 삶에 대한 회의감은 짙어진다. 오늘이야말로 앱을 지워야겠다고 다짐하길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과는 상관없이 점심쯤이 다가오면 텅 빈 뱃속은 천진하고 솔직하다. 어쩔 수 없이 단숨에 몸을 일으키면 어두워진 시야와 함께 짧은 어지러움이 찾아온다. 벽을 짚고 천천히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되새기며 잠시 몸을 기대앉는다. 어제 먹던 음식을 데우며 어질러진 테이블을 간단히 정리하다 보면 바닥에 쌓인 먼지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평일에 하지 못한 청소를 하고 쓰던 글 좀 다듬고 산책도 해야 하는데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간단히 식사를 하며 짧은 영상 한 편 보고 나면 그나마 있던 힘을 다 쓴 것 같다. 그대로 자리에 눕고 싶지만 역류성 식도염은 강제로 바른생활을 하게 만들어준다. 의자에 널브러져 있으면 읽던 책과 노트북과 일기장에 시선이 닿는다. 해야 할 일은 알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고 싶지 않아서 멍하니 벽만 보고 있는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내 모습을 용납하기 어려웠다. 이럴 거면 왜 계획을 세운 거냐 몰아세우며 나를 향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차라리 십 대 때처럼 계획을 느슨하게 잡거나 물 흐르듯 살면 될 텐데 성인이 되며 스스로가 만든 틀 안에서 나를 재단하고 심판했다. 문득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 찾아왔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싶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움직여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남들 하는 만큼은 하려고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성공과 인정을 위해 달렸던 것 같기도 하다.


정확한 목적지와 기준은 없이 무작정 최선을 쏟는 것이 옳고, '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었지만 멈춰보니 쉴 수 있는 틈이 생겼다.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던 깊은 한숨 대신 편한 호흡을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이 그쯤이었나 보다.  


내려놓는 것은 아직도 쉽지가 않다. 할 일이 쌓여있을 때는 등산, 드라이브, 자전거 타기, 영화보기, 책 읽기, 청소, 글쓰기,... 하고 싶은 것이 줄 서있는데 쉬는 날에는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는다. 퇴사 전에는 제주도 한 달 살기, 운전연습, 글 완성을 계획하지만 막상 시간이 생기면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한 채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내가 못마땅해도 '그럴 수 있다'며 잘 쉬고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하고 싶은 일은 힘과 의욕이 있을 때 시작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뤄두던 글을 쓰기 시작하고 시간을 쪼개서 하고 싶던 일에 손을 넣었다. 여전히 오늘처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지만 자책보다는 푹 쉬면서 힘을 빼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힘을 빼고 쉬어간 만큼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힘을 얻어온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오면 잘 자고 잘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해줘야 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내가 충분히 쉬고 또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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