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하루를 마치고 이불속에 들어올 때는 왜 이렇게 몸이 무거운지 모른다. 평소와 다른 중력이 나를 무겁게 눌러내리는 느낌이다.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내고 아무것도 없는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괜히 볼을 누르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려본다. 어떠한 감정은 없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가만히 돌아가는 냉장고의 모터 소리만 작게 들려올 뿐 방안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어둠으로 채워진 공간으로 창문을 통해 비춰오는 가로등 불빛이 퍼지면 희미한 방안의 모습이 나타난다.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의자와 그 앞에 있는 책상에 쌓인 물건이 흐릿하게 구분될 쯤엔 불 꺼진 방안을 걸어 다닐 수도 있다. 그 안에서 나는 무거운 몸을 축 늘어뜨리고 눈을 감아도 멈추지 않는 생각을 따라 움직인다. 전원을 끄는 것처럼 생각도 스위치를 눌러서 멈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시간에는 오늘 있던 일부터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과 해야 할 것을 고민하기도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리하기도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밤은 오고 이불속에 누우면 다음날에 대한 물음이 으레 찾아온다.
소풍 가기 전날처럼 내일이 기다려지는 밤도 있었는데, 최근 몇 년간은 기대보단 막연한 두려움으로 뒤척일 때가 많았다. '내일은 뭐하지', '앞으로는 어떻게 하지', '무엇을 해야 하지'
답을 해결하지 못한 채 쌓여가는 의문 아래서 자꾸만 숨이 막혀온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발버둥을 쳐봐도 거대한 은하 안에 작은 소행성중 하나일 뿐이다. 몇 달간 준비해온 것이 모래 위로 부서지는 파도처럼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때면 내가 무너지고 쏟아지는 기분이다. 다시 추스르고 움직이기까지는 며칠, 몇 주, 길게는 몇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걱정으로 방안을 가득 채우는 날이 쌓이면 문득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언제까지 이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물어도 그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불 꺼진 천장만 공허하게 바라볼 뿐이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렇게 산다고 말한다. 모두가 이런 삶을 산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사는 걸까
끝없는 질문에 잠들 수 없는 밤이 오면 오늘 감은 눈을 뜨지 않길 바란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눈이 떠진다면 그날은 제발 조금 덜 아프길 바랄 뿐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더 나은 날이 올 거라는 것을 알려줬으면 한다. 그 말을 믿고 또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불안했던 스무 살쯤엔 내일이 오는 것을 막고 싶은 날이 많았다. 죽고 싶지는 않지만 현실이 숨 막히게 답답하고 도망가고 싶은 날의 연속이었다. 겨우 한 해가 지났을 뿐인데 성인이라는 이름표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무겁고 부담스러웠다. 같은 상황이라도 더 혼나고 책임져야 하는 무게가 달라졌다고 생각하니 눈물부터 나는 일이 많았다.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서툴고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막연히 다 잘하고 싶어 했던 서툰 나에게 돌아가서 말해줄 수는 없지만 '잘하고 있다'라고 전해주고 싶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나는 여전히 서툴지만 그때보다 더 살만하다고,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고 말이다. 그건 몇 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해줄 수도 있는 말인지도 모른다.
내일도 살아보자고, 지금보다 더 괜찮아질 거라고, 수고하는 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