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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Jun 24. 2024

달리는 인간의 탄생

런중일기 1. 달리기의 시작

나는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달리기는 더더욱, 오히려 싫어하는 편이었다. 초등학교 때 조별로 6명씩 달리기 대회가 열리면 나보다 키가 훨씬 작은 아이 두 명을 겨우 제치고, 매번 4등만 했었다. 참가상인 공책 한 권을 들고. 1등, 2등, 3등 도장이 찍힌 공책을 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쳐다보았다. 엄마는 내게 타고난 다리가 약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때 하체 운동을 했으면 나아졌을까? 줄넘기는 잘하는 편이었는데, 한 번에 이단 뛰기 60개는 거뜬했다.) 여하튼 달리기에는 소질이 없었다. 학생 때의 달리기는 겨루고, 기록을 재는 용으로만 사용해서 그런지 영 흥미로운 운동이 아니었다. 벌로 달리는 운동장 뺑뺑이가 즐거웠던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 (혹시... 손을 든 당신에게 어떤 여러가지 의미로의 박수를 보낸다.)


놀이가 곧 운동이었던 시절에서 벗어나 앉아서 하는 노동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 몸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한다. 주 40시간 이상의 노동 안에서 어느 곳 하나 망가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육체 아니면 정신이라도 병들게 되어 있는 것이 노동이 가지고 있는 불변의 법칙이다. 만약 당신이 육체도, 정신도 매우 건강한 사람이라면 아마 어떤 운동을 지속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노동 이외의 아무 움직임이 없는 상태에서 건강하다고 주장한다면, 타고난 기질이 매우 좋은 사람이거나 건강하다는 착각 속에 있을 것이다.


나역시 ‘앉음’ 노동자가 되면서 몸을 점점 망가졌다. 나의 경우 턱관절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입이 꽉 다문 조개처럼 벌어지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어금니를 꽉 깨물었는데, 그것이 원인이었다. 그 뒤로 어깨, 목, 손목, 위장, 자궁, 눈, 발바닥, 마음까지 차례대로 망가졌다. 병원을 바꿔가며 전전하다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에 난 구멍은 너무 크고, 나의 두꺼비는 너무 작아서 물을 세어 나가고 있음을 넋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밑 빠진 독에 병원비 메꾸기 대신 독을 먼저 수리해야 했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가 꿈은 아니었지만, 건강함은 일종의 긍정이고 긍정을 기반으로 하는 삶은 그 반대에 비해 꽤 수월하고 편한 편이었다. (오랜 연구 끝의 결과다.)


어쩌면 달리기 전부터 나의 달리기는 시작된 것 같다. 스트레칭을 자주 해주고, 채소를 챙겨 먹고, 렌즈 대신 안경을 쓰고,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고, 정기적인 상담과 나에게 맞는 약 복용까지,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몸으로 전환하는 기나긴 과정을 몇 년을 거치고 나서야 뛸 수 있는 사람이 완성이 되었다.


달리다 발견한 철쭉 꽃잎


월요일이 되자 왼쪽 아랫배가 아려왔다. 한 달마다 반복되는 통증. 며칠 전부터 사소한 것과 사소한 척을 하는 모든 것에 짜증이 솟구치는 것에는 이것이 이유였나 보다. 30년이 넘었으나 이 아릿한 아픔에 적응되지 않는다. 월경이라는 시스템은 내 몸에 관한 자율권이 내게 있지 않고 대자연에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생명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의 나. 내가 모르는 세계,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는 제한된 세계가 '나'를 구성한다.


달리기는 일종의 자율권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다. 시간을 갈수록 편협해지는 인간을 움직임을 태초의 것으로 되돌린다. 실제로 운동으로 단련된 신체는 시간을 거스르기도 한다. 태초의 것으로 되돌아가는 행위는 곧 대자연과 가까워짐을 의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자연과 가까워질수록 몸은 더 자유를 얻는다.


움직임으로 생명은 지속된다. 에너지가 이동하면서 분자들은 지속적으로 분해되며 재결합한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곧 죽은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것을 부러워할 때도 있었다. 그것을 동경하며 돌멩이를 키우는 사람처럼 내가 곧 돌멩이가 되기를. 에에올*의 한 장면처럼 삭막한 골짜기의 돌이 된 나를 상상한 적이 있었다. ‘음, 지금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걸.’이라고 생각하는 건 돌멩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돌멩이의 마음을 어찌 알겠어.) 숨을 들이마시며 몸의 움직임을 알아채본다. 어쨌든 달리고 있다.


*영화 에브리띵스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2024년 4월 22일 월요일에 발견한 이야기.

※밀리로드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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