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본 적이 있어요
아마 그때 본 얼굴일 거예요
장갑 한 짝을 떨어뜨렸을 때,
내 옆을 지나가는
여인의 말 한마디에도
엘리베이터에 문이 닫힐 때
황급히 움직이던 손가락에도
듬성듬성 자리가 남은
버스정류장 벤치에서
한 사람의 자리를 만들며 움직이는 엉덩이에도
그 얼굴을 본 적이 있어요
당신이 내게 준 순간을
차곡차곡 저금해 뒀다가
하루가 실망으로 가득 차서
눈가가 뜨거워질 때
나는 그 얼굴을 떠올릴 거예요
그리고,
조금은 덜 외로울 거예요
작가 노트 | 다정함이라는 사랑
이 글은 어느 겨울날,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장면에서 시작됐습니다.
짐으로 가득한 벤치 끝에 조용히 앉아 있던 중년 여성이, 저를 위해 조금씩 몸을 옆으로 밀며 자리를 만들어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행동은 단순한 호의나 습관처럼 보였지만, 그 순간 저는 그 안에서 얼굴 없는 사랑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배려,
몸짓에 묻어나는 온기,
우리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방식의 사랑 —
그것을 저는 ‘다정함’이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특별한 순간에만 사랑을 떠올리지만,
사실 가장 진한 사랑은 아무도 보지 않는 일상의 조각들 속에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는 그런 조각들을 마음속에 하나하나 저금해두려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삶이 너무 고단할 때,
그 얼굴들을 떠올리며 조금은 덜 외롭기를 바라는 저만의 주문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오후 여섯시의 고양이’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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