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2
해가 지나간다
아니, 구름이 지나가는 거겠지
마음속의 내가 말한다
해가 나온다
해가 들어간다
아니, 그건 늘 구름이었다
구름을 탓하지 마
그저 바람에 흘러가는 거야
아스팔트에 닿은 구름 그림자
산 위를 오르는 구름 그림자
바람이 만든 마음의 풍경
지금, 이 점심 같은 오후에
나는 그것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햇빛을 가리려
신호등 기둥에 숨어
이건 해보다 자외선 때문이라고
햇님에게 변명을 해보며
눈꺼풀을 비빈다
오늘까진 아팠지만,
내일부터는 덜 아플 거라는
위로의 말이 숨겨진 약 봉투에는
“졸리면 반 알만 드세요”
라는 안내가 쓰여 있다
걸어가도 될까
이렇게 좋은 날,
해를 보고 싶어서
느릿느릿, 비틀비틀, 걷는다
이 시는, 누군가를 깊이 사랑했지만
그 마음이 결국 닿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버린 어느 날의 풍경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사람을 향한 내 마음은 분명 진심이었지만,
사랑이란 건 진심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언젠가 알게 되죠.
나는 그때 해를 바라보았어요.
구름에 가려졌다가, 다시 나왔다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던 해처럼.
사랑도 그런 거라고 믿고 싶었어요.
비록 그 마음이 그 사람에게 닿지 않아도,
나 혼자만의 자리에서 계속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게 어쩌면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믿음.
그런데 이상하게도,
해를 사랑하면서도 그 눈부심이 버거워
신호등 기둥 뒤로 슬쩍 몸을 숨기고 마는 나를 보게 되었어요.
자외선을 탓하면서, 피곤함을 핑계로 애써 외면하면서—
결국은 내가 사랑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초라해진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죠.
이 시는,
‘이제는 나 혼자만의 사랑이구나’라는 슬픔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사랑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안아주고 싶었던 마음과,
그 마음을 숨기며 멀찍이 서 있는 내 모습까지 함께 담고 싶었던 글입니다.
이 글은 ‘오후 여섯시의 고양이’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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