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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May 06. 2024

지방대 촌뜨기, 대기업 무혈입성하다

문송하지만, 전공살려 취뽀했습니다

또르르..

전화 벨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 말투가 다분히 사무적이다.

“안녕하세요. 위아주식회사 인사팀 권○○입니다. 우리 회사 합격을 축하드리며...”

담담하게 받아들였으면 더 멋있었을텐데..


함께 취업 준비를 하던 친구를 얼싸안고 대학 교정이 떠나라 마구 발광했다. 지원 직종은 홍보직. 홍보팀 자체가 신생 조직이라 할 일이 많을 것이라 덧붙였다. 지방대 문과를 나와 대기업에 ‘드디어’ 안착하는 순간이었다. 작은 기적이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교에 갓 복학했을 때의 일이다.     

 

오후 햇살이 나른하게 들던 신문방송학 과방. 나보다 한 학번 높은 99학번 형이 03, 04학번 남자 후배들을 잔뜩 모아두고 일장 연설을 이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선택받은 수컷인지, 어떤 비열한 방식으로 여심을 훔쳐왔는지 편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뱉은 말이 내 귓가를 때려왔다.     


“우리는 끽해야 9급 공무원 인생이야. 메이저 언론사, 대기업은 말도 꺼내지말고 중소기업, 9급 공무원이나 해먹으면 잘한 인생이야. 니들은 어차피 해도 안 돼. 그러니 힘빼지 말고 조금이라도 젊을 때 여자나 마니 후리고들 살어. 그게 남는 거야”     


가히 깡통대가리가 모이는 곳다웠다. 대놓고 본인의 삶을 저딴 식으로 하향 평가해버리다니, 앞날 창창한 새내기 후배들 모아두고 본인의 빈궁한 철학에 결핍된 자존감을 만천하에 드러내다니.     


그 길로 당장 그 선배의 멱살을 쥐어잡고 ‘못할 거면 너 혼자 못해. 왜 남의 앞 길에까지 재를 뿌리고 지랄이야’ 한마디 외쳐주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나름 거점국립대라 자위해보지만 본디 원하는 대학이 아니었고, 노력과 성적에 비해 대폭 하향조정하여 입학한 학교였기에 정이 붙지 않았다. 보여주고 싶었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몸을 담고 있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너와는 천양지차라는 것을.     


태어나 운동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는 선천적 약골이었지만, 깡다구 하나로 해병대 생활을 마친 나였다. 군 생활은 해병대 내에서도 악명 높은 백령도에서 마쳤다. 악마같은 선임,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순둥했던 눈가에는 제법 매서운 바람이 들었다. 해병대에서는 ‘못한다.’, ‘안된다.’라는 말 자체를 쓰지 못하게 했다. 해병이 안되는 것이 있나? 해병대가 못하는 게 있어? 만 2년 거친 사내들과 모래밭에서 구르는 동안 맘 한편에는 자신감 한줄기가 불쑥 자라나있었다.      


맘에 들지 않는 학교 간판이었지만 다시 수능을 준비해 대학을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전역 후 1년간 알바를 해 모은 돈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1년간 수능을 맘편히 준비할 자금으로는 부족했다. 그리고 없는 살림에 홀몸으로 자식 키우느라 어느새 늙어버리신 엄마에게 또 하나의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일단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보자 맘을 고쳐먹었다. 여기서도 열심히 한다면 얼마든지 메이져 언론사, 대기업을 갈 수 있어. 원래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잖아?     


대학은 성실도라 생각했기에 수업은 5분전에 도착해 맨 앞자리에 앉았다. 공강 시간엔 어학실에서 토익 듣기를 공부를 하거나 도서관을 찾아가 전공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이따금씩 동기들과의 술자리를 즐기기도 했지만, 그런 자리에서 의미없이 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아까웠기에 조금씩 자리를 피했다. 동기들과의 술자리 역시 결국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수컷인지를 자랑하려는 모임으로 변질되어갔기에..     


미래가 없는 동기 몇 명에는 고깝지 않게 내비쳤나보다. 때때로 뒤에서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점마 저거는 지 혼자 얼마나 잘 먹고 살라고, 무슨 고시공부라도 하는갑제?’

미래 없는 자의 시기어린 뒷담화는 신경쓰지 않았다. 말초적인 쾌락을 좇는 동기들과 살짝 멀리하는 대신, 취업, 영어회화 스터디를 다니며 건실한 청년들과 어울리려 했다.(해당 취업스터디 멤버는 지방대라는 핸디캡을 뚫고 전원 대기업, 메이저 공기업에 취뽀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안되는 건 없는 거다. 안되는 사람이 있을 뿐.)      


그렇게 약간의 인심을 잃어가며 다가오는 연애도 내쳐가며 그 ‘미래’라는 것에 올인한 대학생활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염원했던 미래는 현실이 되었다.


축!! 大현대자동차그룹 내 핵심부품 계열사 현대위아 입사!!


졸업과 동시에, 그것도 2류 축에도 못끼는 지방대 출신 주제에, 전공을 살린 취업이었다. 


“이 곳이 나의 꿈을 펼칠 놀이터구나”

굴지의 자동차그룹사 본사 홍보실이었다. 마음껏 뛰어놀아보자. 세계를 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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