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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May 19. 2024

회사적응기-깍이고 죄여라.

공장밥 3년이면 솜털 대학생도 산업역군이 된다?

늘 그렇듯 야근 후 퇴근하는 길이었다. 회사 기숙사는 본사 공장 바로 길 맞은 편이었다. 별빛 친구삼아 퇴근하는 길이었다. 산업도로에 내비친 달빛이 그렇게 운치있지는 않았다. 잠은 기숙사에서, 하루 3끼 식사는 모두 회사 공장밥으로 때우는 삶의 연속이었다.     


불현듯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엄마?”

“이 밤에 뭔 일이고, 무슨 일있나?”

“아니.. 그냥 퇴근 길에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우리 자식 3명 먹여 살려줘서 고마워. 세상이 이렇게 거친 줄은 몰랐어.”

“뭔 별 소릴 다한다. 오늘도 고생했제?”

“아니야 엄마, 오늘도 나 칭찬받으며 일했어. 상사들이 나 되게 예뻐해.”


대학이라는 보호막을 벗어나 맞닥뜨린 사회는 생각보다 더 만만치 않았다. 서툰 맘에 실수라도 할세라 늘 긴장감을 앉고 살았다. 엄마는 지아비없이 홀몸으로 자식 3명을 건사하여 말쑥한 사회인으로 키워내셨다. 식당 서빙으로 시작해 농장 잡부에 아파트 건설 능짐 노가다까지, 닥치는대로 품을 팔아 그날그날 양식을 구해오셨다.      


취업을 하고 세상과 본격적으로 마주하고서야 떠올리게 되었다. 시모 하나, 자식 셋 딸린 미망인이 마주한 세상은 얼마나 거친 세상이었을까. 지아비는 재산은커녕 빚더미만 남겨두고 하직했으니...     


샤워를 하고 간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까탈스러운 팀장이 내준 숙제는 잠자리에서까지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불합리한 맞선임의 갈굼에 이성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어버버했던 스스로가 바보같기만 했다. 

    



녹음이 지고 가로수가 엷은 갈색 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한 2007년 10월 어느날.

공장 작업복을 보급받은 홍안의 청년 12명이 본사 대강당에 집합했다. 공채가 아닌 수시특채 기수였다. 동기들이 적었다.     


2주간의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각자 부서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공계 동기들의 경우 차량부품, 공작기계, 산업기계, 방위산업 등 다양한 사업부로 배치받았다. 난 TO가 1명이었던 홍보직 입사지원자였기에 고민없이 홍보팀으로 발령받았다.     


홍보담당 직원은 대리 1명, 사원 1명,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으로 단출했다. 팀장은 홍보복지부장이 겸임하고 있었다. 대외홍보 활동을 갓 시작한 시점이었다. B2B기업인데다 그룹내 완성차 회사인 현대차, 기아차의 물량이 대다수였기에 브랜드 관리의 필요성을 크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복지부서 내에 홍보파트가 신설된 것이었다. 갓 태동한 조직이었기에  창의력과 역량을 마구 펼칠 수 있다는 설렘도 잠시, 이내 루틴화된 일상에 잦아들기 시작했다.   

  

홍보팀의 하루는 남들보다 빨랐다. 새벽에 배송된 따끈한 신문을 스크랩하는 일로 시작했다. 새벽 6시에 출근해 한국경제, 매일경제와 같은 경제지를 비롯해 조중동, 그리고 경남도민일보와 같은 지역 유력지의 기사를 훑어 CEO와 임원진들이 보기 편하게 한 권의 문서로 묶었다. 따로 신문을 들춰보지 않더라도 자동차산업, 중공업 업계 동향, 환율, 금리 동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큐레이션 하는 업무였다.     


매일 반복되는 잡무였기에 신문스크랩 업무는 막내인 내게 배정되었다. 타 부서원 40여명과 함께 사무공간을 사용했는데, 새벽에 혼자 출근해 불을 켜면 차분하게 내려앉은 새벽공기가 나름 좋았다.   

   

단순 반복의 업무였지만 내 손을 거친 기사들이 현대자동차그룹의 부회장에게 바로 송달된다는 것이 뿌듯하기도 했다. 생산부서에 배치된 동기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지근거리에서 CEO를 보좌하는 홍보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신문스크랩 업무가 늦어지는 날은 아침을 거르기도 부지기수였고, 새벽에 출근한다하여 일찍 마쳐주는 인간미(?)가 있는 회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의 경영에 내가 한몫하고 있다는 이 단단한 착각은 매일 아침을 활기차게 열어가는 힘이 되어 주었다.     


아직 대외홍보는 준비단계였지만 사내홍보는 활발히 진행했기에 해야할 일이 많았다. 신제품 개발, 정밀기계 전시회 참가소식, 수주 소식 등 회사 내외부에 산재한 이야기를 다듬어 사보에 실었고, 간간이 경남신문, 경남도민일보 등 지역신문에는 대외홍보의 일환으로 회사 소식을 가다듬어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회사 규모에 비해 소소한 홍보활동이었지만 신문방송학과에서 배운 지식을 실무에 녹여내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군인들이 수행하는 활동의 80%가 바로 ‘작업’이라는 것을 아는가. 진지를 구축하고 교량을 올려 전차가 다닐 수 있게하고 보급로를 확보하는 일. 바로 노가다요, 삽질이다. 강철부대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고도의 침투술, 대테러 등 특수한 능력이 필요한 작전은 극히 드물다.     


회사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홍보 비중이 작은 회사였다보니 홍보의 모태가 된 총무부서에서 복지, 안전, 보안 등의 업무를 떼와 병행 수행하고 있었다. 내 경우 사내 식당 운영과 직원 콘도 지원, 자잘한 물품 구입, 현수막 제작 등의 잡무를 맡았다. 이런 잡무를 맡는다는 게 처음에는 너무 사소하게 느끼기도 했지만, 직장 생활 연차가 쌓여가면서 잡무 수행 중 익힌 인연들이 나의 큰 힘이 되어주었다.  

  

갑자기 가족여행을 가게된 사원의 콘도 편의를 봐주고 긴급하게 현수막이 필요해진 부서의 요구에 응대하는 과정에서 회사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모든 잡무를 내게 떠맡긴 내 맞선임에게는 없는 파워가 생긴 것이다. 다른 면으로보면 사내정치파워이기도 했다.   


어리버리 실수 연발에 매일같이 혼이 나던 신입사원은 어느새 ‘회사 돌아가는 꼴’을 제법 아는 회사 중견사원으로, 산업현장의 역군으로 그렇게 거듭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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