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sgirrrl Apr 11. 2021

'나'라는 데이터 1

나를 더 잘 알기위한 나에 대한 데이터 분석

'나'란 사람에 대해 문서상으로 표시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성별, 생년월일, 주소 같은 것들. 언젠가 내 정보를 기입하던 때에 나이대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나이대가 24-34, 35-50, 50 이후로 나눠진 걸 보고 불공평하다고 투덜거렸다. 65세 이후도 아니고 50세 이후가 같은 나이대로 묶인다니. 

나이로 나를 규정하는 건 이토록 쉽지만, 사실 나란 데이타를 분석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각자의 판단 잣대가 제각각이다. 어떤 이에게는 내가 너무 잘나 보이기도 하고 다른 이에게는 내가 너무 못나 보이기도 한다. 나로서도 잘나 보이는 순간이 있고 못나 보이는 순간도 있다. 잘나 보이는 순간은 인스타그램으로도 기록해서 남기고 싶고 못나 보이는 순간은 어떻게든 감추거나 잊거나 회피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정말 순수하게 나의 시선인가? 다른 누군가의 시선은 아닌가? 한국에서 나고 자란 경우에는 집단 시선이 너무 강하게 머릿속에 이식되어 있기 때문에 내 시선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낫나 남이 낫나 비교가 가능해야 잘나고 못남의 결론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나'란 데이터를 분석할 때 중요한 점은 그런 외부 시선을 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크고 작은 성취들이나 행복한 시간들을 중심에 놓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실하게 자신과 대화를 해야 한다. 


처음엔 힘들었다. 내가 대체 앞으로 무엇을 할 수는 있을지 가능성은 있는 건지. 자식의 미래를 걱정해야할 시점에 내 미래의 대차대조에 시간을 안배하는 게 맞는 것인지. 나에게 도무지 나아질 희망이 있는 건지 오리무중이었다. 나란 사람이 이렇게 공들여 분석을 해볼만큼 가치가 있을까? 시간낭비 아닐까? 이렇게 가치를 따지는 시선이 바로 내가 아닌 남의 시선이다. 

일단 나는 글을 오랫동안 써온 사람이다. 지금 쓰고 있는 식의 에세이를 반나절만에 불완전하게나마 다섯편 이상 토해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생각을 바로 문서화하는 기술이랄까. 자격증은 없고 대가도 적은 기술이지만 자신을 다독이는 데는 꽤 괜찮은 기술이다. 어쨋거나 이런 기술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리고 나는 10대때 글쓰기로 칭찬을 받은 이후로 지금까지 쭉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쓴 글을 기고할 곳도 있고 즐겁게 읽어주는 몇몇 사람도 있다. 수익은 예전같지 않지만 여전히 내 이름으로 근근히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이렇게 오랜동안 글을 쓰는 여자 자유기고가가 있었던가. 아무래도 비교적 새로운 직업군이다보니 부침이 심하다. 내 주변에서 글쓰기를 같이 시작했던 사람들 중 지금까지 글을 쓰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나는 버티었고 살아남았거나 어쨋든 아직 시장의 수요가 있다. 원하는 시간에 빨리 마감을 해줄 수 있으며  20년 넘게 유지해온 기술이다. 아마도 앞으로 컨텐츠 생산자라는 직업명으로 계속 발전시켜나가야 할 기술일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쓰려면 자원이 필요하다. 돈도 필요하고 인적 네트워크도 필요하다. 돈은 늘 없었고 뉴욕에서의 네트워크는 과거 한국에서처럼 방대하지 않다. 영어로 소통하는데 별문제는 없지만 쓰기는 거의 초등학생 수준이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의 영어 글쓰기를 단기간 따라잡기는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하지만 목표로 삼을 수는 있다. 언젠가 영어로 글을 기고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다른 나의 장점은 뭐가 있을까. 영화와 각종 문화에 대해 많이 안다. 한계가 있다면 트렌드를 쫓아가는 건 점점 힘겨워진다는 점이다. 대신 무언가를 깊이있게 파고들거나 관련자를 취재하여 정보를 정리하는 데는 능숙하다. 또다른 장점은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적응을 하면 누구보다 능숙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나 환경에 대한 충분한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이후로는 자생력이 강하다. 뉴욕 거리를 10년 내내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것을 경험하고 목격해왔다. 길치인지라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설명해주기 힘들지만, 이 도시의 공기에 대해 이제는 뉴욕커라고 스스로를 칭해도 쑥쓰럽지 않을만큼 익숙해졌다.  


그리고 나에게는 시간이 있다. 아이를 키우지 않고 반려동물도 없는 관계로 홀로 있는 시간에 오롯이 혼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번. 책을 쓴다. 친한 후배는 나를 두고 10년 동안 책 아이템 못 정한 글쟁이라고 부른다. 그동안 몇 곳에 아이템을 제안해봤지만 받아준 곳이 없었다. 대개는 취재 기반 아이템들이라 노력에 비해 대가가 굉장히 적을 아이템들이었다. 그리고 개인적 선호보다는 트렌드에 발맞추는 안목이 더 반영되었던 아이템들이었다. 일례로 내가 뉴욕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관심이 많았을 때 관련 글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 지인은 나를 혹독하게 비난했다. "니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뭘 아는데? 전문가도 아니잖아?" "취재해서 쓰면 되죠." 이 얼마나 나이브한 기자의 자세인가. 한 권의 책과 일회성 특집기사는 달랐다. 책을 쓰기 위해선 더 많은 자원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책 프로젝트는 확실한 아이템이 생길 때까지 보류되었다. 그러나 탐색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계속 프로젝트에 오픈되어 있음을 여러 사람에게 알려놨다. 죽기 전에는 뭐라도 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역시 나이브하다)


2번. 학교에 간다. 계속 이력서 통과가 안되고 영어 실력에 한계를 느끼자 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대학교 학부를 가고 싶진 않고 대학원을 가고 싶은데 추천서가 필요했고 어디서 어떻게 추천서를 받아야할지 애매했다. 그리고 대학원은 학비가 비쌌다. 돈과 시간을 들여 대학원을 갔는데 일자리를 못 잡으면 빚이 늘어날 테고 그러면 더 힘든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겁이 덜컥 나는 선택이다.

그나저나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 심리학? 사회학? 영화? 하나같이 일자리 찾기 힘든 학문들이다. 컴퓨터 공학이나 과학, 의학 쪽이 아니라면 미국 땅에서 자리잡기 힘들 것이다. 

그나마 사이드 잡으로 유지하고 있던 개인 병원의 행정 경험과 기자의 경력을 섞을 수 있는 학문을 발견했다. 영어로 Public Health, 한국어로는 보건학이었다. 생각해보지도 못한 영역이었는데 내 능력과 경험으로 가능한 것들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학문이었다. 더군다나 1년 코스는 추천서와 GRE 테스트 결과가 필요 없었다. 수료할 경우 자동으로 대학원으로 편입할 수도 있었다. 일하면서 파트 타임으로 출석하고, 학비도 저렴했고, 그토록 꿈꿨던 대학원 공부도 경험하고, 여차하면 대학원도 갈 수 있었다. 이력서에 스펙 한 줄 더하자는 마음가짐으로 도전. 합격했고 1년을 공부했다.


그리고 나에 대한 데이터가 추가 되었다. 내가 어떤 학업 스타일이고 좋아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더 확실해진 것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보건학이 아니라 영화학이었다. (이런 돈이 안 되는 결론이라니 읽는 분들의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같다!) 


 



   


이전 02화 자책과 남탓의 순환에서 벗어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