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도착해 예약을 확인하고, 잠시 대기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몇 해째 같은 자리에 앉아, 반복되는 공기를 들이마시는 시간. 조용한 음악, 낮은 조도, 일정한 공기 흐름이 사람을 느리게 만들었다.
이름이 불리고, 선생님 방으로 들어섰다.
오 년 전부터 나를 맡아온 정지수 선생님의 사무실은 그날도 변함없이, 조용한 온도로 나를 맞았다. 묵은 냄새도, 인위적인 향도 없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 공간은 내게 ‘편안하다’는 말의 모양을 가르쳐주었다.
소파에 앉아 벽면을 바라봤다. 한쪽 벽을 채운 도시 풍경 사진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취향, 그 점이 이상하게 좋았다.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 그게 마음을 놓이게 했다.
“잘 지냈지? 요즘 연락이 없길래, 오늘 안 오는 줄 알았어.”
“연락은 자주 못해도, 선생님 만나는 날을 빼먹을 순 없죠.”
나는 늘 앉던 소파에 몸을 기대고, 손에 쥐어진 잔을 가만히 들었다. 따뜻한 음료가 손 안에 익숙하게 감겼다. 선생님은 요즘 별일 없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저 가볍게 웃었다.
잠시, 별 얘기 아닌 이야기들이 오갔다. 가령, 상담 초기에 만났던 아이의 근황이라든가. 열일곱 살 무렵, 학교란 제도가 역겹다고 했던 애가 검정고시를 준비해서 덜컥 합격했다는 이야기. 처음엔 허세려니 했지만, 말마다 진심이었을 거라고 그녀는 말했다.
말투도 흉내 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는요, 그게 너무 비효율적인 거예요' 같은 말투로. 억지스러웠지만, 그 흉내가 오히려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한참 웃은 뒤, 그녀는 안경을 고쳐 쓰며 내게 말했다.
“자, 오늘 봉우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그녀는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였다. 마치 무슨 이야기를 하든 괜찮다고, 나는 그저 네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눈빛. 나는 잠시 말없이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내 안에서 작은 떨림이 지나갔다. 쉽게 꺼낼 수 없는 문장이 있었다.
“사실… 요즘도 술을 매일 마셔요.”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렇구나.”
담담했지만, 눈빛 아래로 얇은 긴장이 미세하게 흘렀다.
“그들이 매일 생각난다거나, 사무치게 그립다거나 하진 않아요. 그런데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내 말에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눈빛이었다.
“노력은 해봤니?”
나는 손끝을 조심스레 맞잡았다.
“글쎄요. 사실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술을 안 마시려고 애써야 노력이라고 할 텐데… 그런 생각조차 안 드는 것 같아요. 그냥… 마시는 게 습관이자 의식처럼 굳어버린 느낌.”
말이 끝난 뒤,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 고요함은 불편하지도, 편하지도 않았다. 서로가 이 이야기엔 침묵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잠시 후, 그녀가 물었다.
“요즘엔 어떤 기분으로 술을 마시는지, 물어도 될까?”
질문은 조심스러웠지만, 또 너무 조심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 무슨 기분이었지. 습관처럼 마셨던 것도 같고, 딱히 기억나는 감정은 없었다.
“다들 나한텐 술 마시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그럼 이게 결국은 나를 망치게 하는 일이겠구나 싶었어요. 그렇다면 더 마셔야겠다, 싶더라고요. 나는 어차피 행복하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
말을 끝내며, 웃었다. 입가엔 농담 같은 표정이 걸렸지만, 눈가는 금세 다른 표정을 띠었다. 그 말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늘 그렇듯 무언가 저릿한 감정이었다.
그녀는 그 말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말 대신,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잔디가 흔들리고, 벤치 위엔 누군가가 책을 읽고 있었다. 지나치게 평화로운 풍경이, 오히려 이 방 안의 공기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럴 수도 있지…”
낮고, 단단한 목소리였다.
“그런 생각이 들 만큼, 힘들었을 테니까.”
그녀의 말에, 가슴 깊숙한 곳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묻어두었던 죄책감이, 마른 잎처럼 바스락이며 올라왔다.
글쎄, 내가 과연, 힘들 자격이나 있는 사람일까. 잊었다고 믿었던 이름들과 얼굴들이 기억 저편에서 불려 나오듯 천천히 스쳐갔다. 언니, 아빠, 재하. 그리고 그날의 절망.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내 쪽으로 돌아왔다. 걱정과 연민이 겹쳐진 눈빛이었다. 무엇 하나 강요하지 않고, 다만 오래 바라봐주는 사람의 표정. 내가 던진 말보다 먼저, 그녀의 얼굴이 먼저 슬퍼졌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나를 향해 건넸던 그 눈빛과 똑같았다.
그 눈빛이 말보다 먼저, 내 안 어딘가를 조용히 건드리고 지나갔다.
육 년 전. 잔뜩 취한 채로, 흐려진 정신 속에서 나 자신을 다치게 했던 밤.
매캐한 술 냄새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비틀거리던 손엔 텅 빈 술병이 들려 있었고, 시야는 자꾸만 번졌다. 소파 옆 탁자 위에 놓인 사진 하나가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웃고 있는 엄마, 언니, 아빠, 그리고 나. 그 속의 웃음은 지금의 나와는 너무 멀었다.
“왜, 왜 다들 나만 두고 떠나버린 거야-”
목소리는 갈라졌고, 울음은 거칠고 날 것 그대로였다. 언니의 죽음, 재하네 가족의 사고, 아빠의 흔적 없는 부재. 말로 다할 수 없는 절망이 바닷물처럼 밀려와 몸을 눌렀다.
사람들 눈엔, 내가 좀 그런 사람인가 보다. 괜히 잘 버틸 것 같고, 웬만한 일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되는 건 내 몫이 됐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무너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시선들은 어느새 나를 지탱하는 게 아니라, 나를 가두는 족쇄가 되었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없는 사람. 그래서 결국엔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된 사람.
소파에 주저앉은 나는 남은 술을 털어 넣고, 탁자 위로 병을 던졌다. 유리가 바닥에 부딪혀 파편으로 부서졌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말은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반복할수록 더 부서지는 말.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나를 갉아먹었다.
그 순간,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어 그것을 들었을 때,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차가운 유리 끝을 팔목 위로 가져갔을 때, 처음으로 모든 감각이 선명해졌다. 그때의, 그 날의 나는 살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라,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유리가 스치며 남긴 얕은 상처에서 따뜻한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유리끝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줘, 더 깊게 그으려는 찰나, 휴대폰 진동이 방 안에 울렸다. ‘엄마’였다. 그 이름 하나에, 손끝의 힘이 풀렸다.
유리는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흐느낌은 멎지 않았고, 나는 바닥에 오래도록 웅크리고 있었다.
결국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했다. 찬물로 얼굴을 씻어냈다. 숨은 가라앉지 않았고, 식지 않은 감정을 손등으로 문지르듯 눌렀다. 타일 바닥에 등을 붙이고 천천히 주저앉았다. 등으로 전해진 차가운 감촉이 안쪽까지 스며들었다. 감각들이 서서히 식어가고, 그제야 아주 조금,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아주, 조금.
그날 아침, 문이 열렸다.
문틈 사이로 찬 공기가 들이쳤고, 그보다 먼저 엄마의 숨소리가 방 안에 스며들었다. 어질러진 거실, 희미하게 굳은 핏자국. 화장실 바닥에 등을 붙인 채 잠들어 있던 나. 그런 나를 한참이나 내려다보고있던 엄마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나를 깨웠다.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 말 없는 손길에 이끌려, 나는 처음으로 선생님 앞에 섰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거의 끌려오듯 찾아와, 문을 열었다. 너무 조용한 공간. 심지어 창밖 햇빛조차 거슬리게 느껴질 만큼, 모든 것이 낯설었다. 소파는 푹 꺼져 있었고, 맞은편의 그녀는 조심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불편했고, 나는 시계를 두 번, 세 번 바라봤다.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무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생각을 묻는 말에는 “몰라요”, “아니요” 같은 짧은 말만 남았다. 말을 꺼내는 일이 고문처럼 느껴졌다. 숨 쉬는 것조차 버겁던 그날의 나.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처럼.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한결같았다. 평온한 눈빛, 기다려주는 태도, 무언가를 조르지 않는 목소리. 그녀는 스승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오래된 친구처럼 곁에 머물렀다.
“가끔 너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더 독한 술을 찾아요.”
내 말에 그녀는 조용히 안경을 고쳐 썼다.
손끝이 관자놀이를 스치고, 시선이 천천히 내 쪽으로 돌아왔다.
“왜 행복이라는 걸 느끼면, 그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걸까?”
나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하면 곧 나쁜 일이 따라올 것 같아서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너무 웃으면 울게 된다’는 말, 있잖아요. 행복은 뭔가를 잃기 직전에 주어지는 기분 같았어요. 그래서 기쁘면 기쁠수록 무서워지는 거예요.”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잠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그걸 안고 지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는 조금 더 깊은 질문을 꺼냈다.
“그 생각이 꼭 그날의 사고 때문만은 아니라면, 그보다 더 오래된 기억이 있을까?”
나는 잠시 입술을 깨물고, 기억을 더듬었다.
“조금 부끄러운 기억인데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기다렸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땐, 친구가 꽤 많았어요. 도시락도 나눠 먹고, 운동장도 함께 뛰어다니고. 근데, 어느 날부터 이유도 없이 다들 멀어졌어요. 말도 없이. 그때 처음, 뭔가 좋으면 곧 나쁜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던 것 같아요. 왕따라는 단어도 모르던 때였는데, 그냥 그런 감정이었어요.”
나는 시선을 피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날도, 정말 행복했거든요. 여행을 계획하면서 다 같이 웃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돼버린 거니까.”
말이 끝나자,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내 목소리가 빠져나간 자리를 서늘한 공기가 천천히 메워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소매 끝을 만지작거렸다. 별 의미 없는 동작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만이 나를 붙들어주는 듯했다.
선생님 앞에서는 이상할 만큼 많은 말을 할 수 있었다.
오래 눌러두었던 것들이 허공으로 풀려나듯, 말은 힘들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러자 마음 어딘가가 가볍게 비워졌다.
무겁게 눌려 있던 돌을 잠시 내려놓은 사람처럼. 공허했지만, 그 공허 덕에 숨이 조금 더 깊어졌다. 창밖으로 구름이 흘렀다. 방 안의 빛이 한 톤 낮아졌다. 에어컨 바람이 책상 위 종이를 스치듯 지나가다, 이내 가라앉았다.
그런 시간 끝에서, 그녀가 낮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패턴을 깨는 거겠지.”
나는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행복한 순간을 받아들이는 연습. 불행이 따라온다는 편견을, 조금씩 밀어내는 거야.”
그녀의 말은 서두르지 않았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짧은 쉼이 있었다.
“사람은 종종 불안에 익숙해져. 불안이 없으면 오히려 그게 더 낯설고, 그래서 스스로 불행을 불러오기도 하지. 근데 기억해야 해. 행복은 불안을 없애는 감정이 아니라, 불안의 뿌리를 흔드는 감정이란 걸. 너의 마음에 새로운 길을 내는 건, 결국 네가 스스로 허락하는 순간에서 시작돼.”
나는 웃는 듯하면서도, 망설임이 묻은 얼굴로 물었다.
“그게, 가능할까요?”
그녀는 내 표정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소는, 말보다 오래 머물렀다.
“가능하지. 행복은 자격으로 얻는 게 아니야. 그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거야.”
그리고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물론 쉽진 않겠지. 그러니까 같이 해보자. 아주 조금씩이라도.”
잠시 숨을 고르듯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내 쪽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네가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서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이해해보자. 그 감정이 언제 시작됐는지, 어떻게 자라왔는지. 다른 빛 아래서 다시 바라보면, 같은 풍경도 달라 보이잖아. 나는 그걸 ‘재해석’이라고 부르고 싶어. 네가 붙들고 있던 의미를, 조금씩 바꿔가는 거지.”
감정의 재해석. 그 말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오래된 종이에 잉크가 천천히 번지듯, 보이지 않는 결을 따라 퍼져갔다. 선명하진 않았지만, 확실한 자국을 남겼다. 내 안의 오래 잠가둔 문틈이, 아주 조금 열리는 듯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그러다 보면 알코올에 기댔던 마음도 조금씩 옅어질 거야. 물론 치료는 계속해야 해. 그건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시선은 변함없이 따뜻했다.
“우리, 서두르지 말자.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어. 혼자 너무 애쓰지 말고, 필요할 땐 꼭 연락해.”
짧게 숨을 들이쉬며 나는 대답했다.
“알겠어요, 선생님.”
그녀가 책상 위 다이어리를 덮으려던 순간, 문득 입을 열었다.
“참, 봉우야. 재하라는 그 친구는 어때?”
그 이름에 어깨가 미세하게 반응했다.
“속을 잘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에요. 겉으로는 늘 괜찮은 척하죠.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근데, 저도 그렇잖아요. 밖에서는 괜찮아 보이고 싶어 하니까요.”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고선 책상 속 서랍을 열어 작은 종이 하나를 꺼내 내 앞에 밀어두었다.
“선생님이 찾은 모임이 하나 있어. 한 번 볼래?”
나는 종이를 받아들었다.
‘치유의 모임.’
단정한 글자가 종이 위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이게 뭐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야. 애도는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거니까. 상실은 꼭 떨쳐내야 할 고통만은 아니야. 함께 기억될 수 있는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는 게, 모임의 목적이지.“
나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낯선 글자들 사이로, 익숙한 감정의 그림자 하나가 지나갔다.
“이런 모임이 있다는 건,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저번 달부터 나가고 있어.”
그 말이 끝날 즈음, 목소리엔 잠깐의 떨림이 스쳤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책상 위 작은 액자로 눈길을 옮겼다. 오래된 사진. 따스한 햇살 아래, 어린 여자아이가 그녀 품에 안겨 웃고 있었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이제는 사진 속에만 남은 시간. 그녀의 미소는 평온했지만, 그 안엔 여전히 흐릿한 슬픔이 머물고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그 고요 속에서, 우리 둘 사이에 흐른 감정은 묘하게 서늘하면서도 따뜻했다.
“생각해볼게요.”
내가 낮게 말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구도… 같이 나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혼자 버티는 사람치고, 괜찮은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어서.”
이해와 연민이 뒤섞인 목소리. 그리고 그것은, 내가 재하에게도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