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4 율이 생후 284일의 기록
요즘 율이가 부쩍 나를 찾는다. ‘엄마 껌딱지 시기’가 온 걸까. 그 기운이 슬슬 느껴진다. 오른쪽 눈꺼풀 위엔 며칠 전부터 비립종 같은 게 보여 소아과에 다녀왔다. 아니나 다를까 비립종이 맞았다. 몇 달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라고 했다. “이거 때문에 오신 거예요?”라는 질문에 유난스러운 엄마처럼 느껴져 살짝 민망했지만 그래도 많이 들어봤던 비립종이라니,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니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를 마친 후 집에 바로 가긴 아쉬워 도서관에 들렀다. 집 근처에 소아과와 도서관이 있다는 점이 참 좋다. 내가 읽을 책을 한 권 빌린 후 율이가 놀 수 있는 책놀이터로 향했다. 책은 첫 장부터 읽지 않고 눈에 띄는 부분만 가볍게 넘겨 읽었다.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었는데 우연히 본 한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맞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예쁜 아기가 와주다니. 이렇게 예쁜 우리 율이가 우리 가족이 되었다니. 나는 참 운이 좋다. 집 근처에 진료를 잘 보는 소아과가 있고 내실 있게 운영되는 도서관이 있다는 점도 아주 감사하다.
책놀이터에서 율이가 노는 사이 응가 냄새가 났고, 집으로 부랴부랴 왔다. 이유식을 시작한 후 아주 가끔 토끼똥 같은 응가를 볼 때가 있는데, 어제가 그랬다. 기저귀를 열기 전에 응가 상태가 궁금하고 토끼똥이 아니면 안심이 되고 잘 싼 것 같으면 칭찬이 나온다. 오늘 2차례 응가를 시원하게 봤다. 다행이다.
한숨 돌리며 시간을 보내는데 율이 이모가 아이폰에 예전 사진이 떴다며 보내왔다. 율이와 함께 있는 사진 속 내 모습이 생기 있어 보였다. 지금의 나와 사뭇 다른 느낌. 며칠 전 친정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내 사진을 보는데 속상했다고 하셨다. 식당에서 아기띠로 율이를 안은 채 음식을 먹는 모습이었다. 아기의자가 없어서 남편과 번갈아가며 율이를 안고 식사를 했던 날이었다.
친정엄마는 내 어릴 적 이야기도 꺼냈다. “엄마는 왜 회사 가방 안 메고 다녀?” 전업주부였던 엄마에게, 윗집 언니의 엄마처럼 꾸미지 않는 이유를 물었던 어린 나. 그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율이는 나에게 기쁨만을 주는 아기인데 초췌한 내 모습이 율이를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기’로 만들 수도 있겠구나. 그런 오해가 생기는 건 싫었다.
그래서 파마를 하기로 했다. 그날 밤 냉장고에 있던 유통기한이 임박한 마스크팩을 꺼내 몇 개월 만에 팩을 했다. 팩을 붙인 채로 어떤 느낌으로 파마를 할지 검색을 했다. 파마도 하고 밥도 더 잘 챙겨 먹고, 조금 더 나를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율이를 통해 매일매일 웃음치료를 받으며 내면에서부터 웃음이 이토록 차오르는데, 겉모습으로 오해받을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