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남편 허벅지를 때릴 뻔했다

2025.02.28 율이 생후 270일의 기록

by 곰곰

곧 있으면 율이는 9개월에 접어들고 이유식도 2끼에서 3끼로 늘어난다. 중기이유식에서 후기이유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학습이 필요했다. 이유식 책을 봐도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수월한 진행을 위해 3끼 스케줄을 짜기로 했다. 이전에 초안을 만들어두긴 했는데 다시 보니 아침 7시에 분유로 시작하는 스케줄이었다.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유식부터 먹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다시 스케줄을 짰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율이랑 가장 비슷한 스케줄을 참고했다. 바로 3끼로 넘어가도 되지만 그렇게 한 번에 늘렸다가 두 번째 이유식을 잘 먹지 않거나 분수토를 했다는 글을 우연히 보게 됐다.


점차적으로 늘리는 것으로 해서 스케줄 표를 수정했다. 오전 7시 30분에 이유식을 시작으로 2시간 뒤에 보충 수유를 하고 나면 다시 2시간 뒤에 이유식, 또 2시간 뒤에 보충 수유. 이런 식으로 아침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하루 종일 먹는 스케줄표가 완성됐다. 이 스케줄 표에서 간식은 대체 어느 틈에 먹여하는 것인지 도무지 궁금해서 챗GPT에 물어보니 분유랑 간식은 같이 먹어도 되고 간식 타임도 따로 배정해도 된다고 알려줬다. 문서는 한글파일로 정리했고 후기 이유식에서 알아둘 사항부터 스케줄 표까지 폰트 10포인트로 1장을 빼곡히 작성하게 됐다.


한참 몰입해서 작성하는 사이, 율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거실에 있었기에 남편이 율이를 달래러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이어서 작성하는데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남편이 방으로 간 것인지, 울음소리가 잠잠해졌나 싶었는데 이내 아주 강성울음이 되었다. 거실로 부랴부랴 빠르게 가보니 남편이 자고 있었다.


순간 남편이 정말 얄미웠다. "아니, 이 소리가 안 들린다고?" 율이가 한창 이앓이를 하며 밤 중이나 새벽에 대중없이 강성으로 울었을 때도 남편은 거의 듣지 못하고 잠을 잤었다. 그때도 "진짜 안 들려?" 하면 안 들린다고 했었다. 내일부터는 휴일이 시작이니 남편을 깨우자 싶었고 감정을 실어서 허벅지를 찰싹 때리고 싶었으나 감정을 담아 거세게 흔들었다. "율이 좀 달래줘"


방으로 돌아와 문서를 마무리를 하고 프린트까지 한 후 부엌에서 잘 보이는 곳에 붙였다. "내일부터 이렇게 해보자!" 하며 저녁에 급하게 만들어둔 야채죽을 다시 소분했다. 첫날부터 첫 번째 이유식을 130g을 먹으면 부담이 될 것 같아서 40g만 담고 나머지는 보충수유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130g씩 담았던 야채죽은 두 번째 이유식 때 먹이려고 라벨링을 해서 따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내일 먹을거리까지 정리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거실로 가보니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하며 율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갔다. 율이 발 밑에 남편이 아주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입을 벌리고 잠들어있었다. 남편의 모습을 보는데 순간 웃음이 터졌다. 마치 '본인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여기 있었네... 표정은 뭐야... 풉..."


이제와 돌아보니 남편은 상당히 피곤했던 것이었다. 어제도 야근을 하고 왔고, 오늘도 늦게 집에 왔다. 얼마 전 고지혈증 진단을 받은 후 식단 조절을 한다고 메뉴가 거의 다이어트 식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바뀐 식단에 더 힘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어젯밤엔 남편을 생각하며 오이랑 당근을 썰어 야채 도시락을 만들었다. 도시락을 만들며 '나는 항상 남편에게 이거 해내라, 저거 해내라'하며 받으려고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까도 남편에게 '해내라'며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가장 챙겨야 할 사람은 남편이다.


오늘 율이랑 시간을 보내며 율이에게 "율아, 엄마는 언제나 율이 편이야"라는 말을 건넸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이 말이 참 인색했던 것 같다. 편이 되어주기보다는 옳고 그름부터 따졌던 날들이 떠올랐다. 이번 3월의 육아모토는 이렇게 정했다. “남편이 말할 때 따뜻하게 눈을 마주치며 듣고 ‘그랬구나’ 하고 공감해 주기.” 남편부터 잘 챙기자는 다짐이다. 나의 진짜 파트너니까


20250228.jpg 남편부터 잘 챙기자. 잊지 말자.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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