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원
엄마는 한 시간 이상 걸어서 가는 시골 거리에 있는 면 소재지 국민학교를 한 번도 함께 동행해 준 적이 없다.엄마랑 학교를 걸어가 본 기억도 없다. 난 늘 1학년때도 그렇고 6학년을 다니는 동안 혼자서 그 먼 거리를 신작로를 지나야 했다. 등교시간이 8시 30분이었는데 9시에 도착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월요일에는 조회가 있어서 지각을 해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끝날 때까지 교문 앞에 서성거리고 있었던 적도 자주 있었다.
혼자 학교를 갈 때면 아침이라도 제일 무서웠던 것은 공동묘지를 지날 때였는데 학교 도착하기 중간즈음 되면 꼭 그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양 옆으로 작은 동산이 어우러져 있고 그곳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공동묘지를 지날 때면 크게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곤 했다. 그 동산을 넘어서면 비로소 멀리 교회 십자가가 보이고 안심이 되어서 크게 부르던 노랫소리가 잠잠해 지곤 했다. 저 멀리 우체국과 파출소 농협이 보였는데 농협에도 마트가 있었지만 농협에 마트보다는 우체국과 파출소를 지나서 작은 언덕을 오르면 보이는 8번 슈퍼가 나의 단골이었다.
8번 슈퍼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매우 작아서 들어가면 과자들이 매번 언덕을 이루고 있었는데 거기 슈퍼 주인 할아버지는 다리를 절뚝거려서 내가 무엇을 사는지 고개만 빼꼼히 쳐다보고 있지 좀처럼 앉아서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엄마는 매일 학교에 갈 때 그 당시 20원이면 살 수 있는 새우깡이 값어치를 할 때 나에게 아침마다 50원이라는 큰돈을 주셨다.
"수경아 주머니에 두둑이 돈이 있어야 한다. 잘난 사람들은 잘난 대로 살라 하고 넌 맛있는 거 사 먹으며. 집에 오너라"
엄마는 가끔 내 투정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해 주곤 했다. 나는 매번 50원이라는 동전을 엄마가 손에 꼭 쥐어 주면 그것을 행여 잃어버릴까 봐 꼭 쥐고 그 언덕길을 올라 비로소 8번 슈퍼에 도착하면 그날마다 사고 싶은 것을 사곤 하였다.
8번 슈퍼를 도착해서 물건을 사서 까만 봉지에 담으면 잔돈과 함께 출렁출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맛있는 사탕과 과자가 한데 뒤섞였다. 학교는 비탈진 언덕 높이에 있어서 거기서부터 올라가기 시작하면 한참이 걸렸다. 종종걸음으로 올라가려 할 때 항상 그 옆에 부석식당이라고 중국집 음식을 파는 곳을 지나 양 옆으로 무궁화꽃이 피어 있어 그 사이를 느적느적 걷다 보면 한쪽문이 닫히고 한쪽문은 안으로 젖혀져 있는 교문의 상태가 썩 좋지 않은 학교 입구로 들어갔다. 학교 입구가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만 양 옆으로 가지치기가 잘된 무궁화 꽃은 내 손바닥보다 커서 볼 때마다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힘겹게 도착한 학교에서의 기억은 전혀 없다. 늘 학교를 오고 갈 때 두려움에 떨게 했던 공동묘지 두려움이 사라질 때 즈음 중학교 3학년 때 엄마는 그곳에 장사되었다. 공동묘지를 지나면 비로소 멀리 보이는 빨간 불빛의 십자가 매일 숙제처럼 통과해야 했던 집으로 오는 동안에 항상 거쳐야 했던 그 길이 내 기억에 선명할 뿐이다. 50원을 매일매일 쓸 수 있었던 일상 미처 쓰지 못하고 50원을 손에 꼭 쥐고 집으로 오다가 한 번은 잃어버린 적이 있어 집으로 곧장 돌아오지 못하고 그 언덕길을 두세 번 오르락내리락하며 찾느라 해가 뉘엿뉘엿 지자 찾는 것을 포기하고 그만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부터는 엄마가 주는 돈을 그때 그때 남기지 않고 써버렸다. 한동안 엄마가 아침에 주는 그 돈을 일부러 받지 않은 날도 있었다. 돈을 매일 쓰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8번 슈퍼는 하루라도 거르지 않은 날이 없었다. 엄마가 돈을 다 쓰지 않으면 다음 날 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다 써야 했는지 엄마가 의무적으로 매일 돈을 주었는지 그것은 생각이 나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엄마는 내가 매일매일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게 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먹고 싶은 것이 없을 때는 주로 학용품을 샀다.
날마다 엄마 앞에 앉으면 한참 동안 빗질을 해서 곱게 땋아준 디스코 머리를 하고서 꼭 쥔 50원짜리 동전을 들고 예쁜 구두를 신고 꽃무늬가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나풀나풀거리며 마음에는 공포를 가득 안고 그 길을 걸었던 사랑스러운 내가 생각난다. 엄마는 왜 그 길을 한 번도 함께 가 주지 않았을까? 시골은 농사일로 바쁘니 아침마다 일 하러 가야 했을까?
내가 그 길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비가 오는 날에도 다른 엄마를 통해 우산을 부탁해서 받은 적이 있어도 우산을 들고 찾아온 적은 없었다. 늘 집에 도착하면 심통이 나서 아랫집 할머니집으로 가고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오지 않은 엄마에게는 서운해서 가지 않았다. 들고 오며 먹다가 남긴 새우깡 봉지를 들고 할머니집 노란 장판에 누워 남은 새우깡을 집어 먹는 동안 시골에는 같은 또래 친구가 없어 나는 오랫동안 혼자 있었다.
8번 슈퍼는 사라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