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견디던 아이』
엄마는 버스가 하루에 몇 대 들어오지도 않는 시골에 살면서도 딸 만큼은 남 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었던 야망이 있었다. 시골살이는 엄마가 원하던 삶이 결코 아니었다.
우체부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와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집에 영어 학습지를 배달해 주었다. 매일 해야 하는 영어 학습지는 노란 고무줄에 돌돌 말린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계속 미루어지곤 했다. 엄마에게 학습지를 안 했다고 혼이 났던 기억이 자주 떠오른다.
그때 한창 컴퓨터 학원이 유행하던 시절, 읍내에 있는 21세기 컴퓨터 학원을 다녔다. 베이직 기초부터 도스까지, 명령문을 입력해야 컴퓨터가 실행되는 프로그램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무슨 쓸모가 있었나 싶지만, 당시 컴퓨터 학원을 다니는 일은 성가시면서도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시골 국민학교 정문 앞 봉고차에 가득 싣고 와서 팔고 가던 「이달의 학습」 문제집 다음으로, 시골에서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교육이었다.
그때부터 부모님께 조르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사달라고. 1년 농사를 지어 농협 공판장에 쌀을 내놓으면 벌 수 있는 돈이 100만 원 조금 넘는 수준이었는데, 컴퓨터 한 대는 2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시골에서는 그야말로 값진 물건이었다.
엄마는 사주고 싶어 했지만, 아빠는 반대하셨던 모양이다.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내가 가정부를 해서라도 수경이 공부는 제대로 시키겠어”
시골집 한 채가 이백만 원이면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컴퓨터가 얼마나 비싼 물건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컴퓨터를 원했던지 밥도 굶고 매일 떼를 쓰던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빠가 결국 화를 내셨다. 나의 의지를 꺾고야 말겠다며 몽둥이를 들고 아랫집 할머니 집으로 나타났다. 우리 집은 윗집, 할머니는 아랫집에 살고 계셨는데, 아빠 얼굴에 잔뜩 서린 화를 보는 순간 나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빠는 무서운 속도로 나를 따라잡았다. 나는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까지 전력질주했다.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계속 뛰었다. 아빠도 뛰었고, 할머니는 그런 아빠를 말리려고 뒤따라왔다. 나는 정말 무서웠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쫓겨 달렸다. 결국 나는 소나무가 우거진 산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아빠를 따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가 농사를 짓던 밭을 지나 깊은 숲까지 들어갔다. 내 예상은 맞았다. 아빠는 결국 나를 찾지 못했다. 멀리서
수경아~수경아~”
엄마와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만 들려왔다.
어느덧 온 세상은 깜깜해졌고, 들리는 건 동물 울음소리와 간혹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엄마와 할머니목소리 뿐이었다.
막차 버스가 지나가고, 신작로는 다시 적막에 잠겼다. 대충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어둠 속 밭고랑에 얼굴을 파묻고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한참이 지나서야 신발을 신지 않았다는 걸 알아챘다.
아빠는 술에 취하면 엄마에게 폭력을 가하곤 했다. 어린 나는 엄마를 막으려다 함께 맞은 적도 있었다. 그 이후로 아빠가 술에 취하면 할머니 집으로 도망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때로는 온화한 얼굴로 우리 남매를 보러 오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 날조차 나는 부르르 떨며 긴장했다.
그날 밤, 내 기억으로 밤 열두 시가 넘을 때까지 나는 숲 속에 있었다.
수경아~~ 수경아~~
엄마와 할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그제야 나는 조용히, 조심스레 밭을 가로질러 신작로를 따라 걸었다. 깊은 어둠을 응시하며 할머니 집에 도착했을 때, 마루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나를 보듬어 주었다. 나는 그 품에 안겨 지쳐 잠이 들었다.
그날 나는 이를 악물고 뛰었고, 고개를 파묻고 웅크린 채 숲 속에서 구름이 지나가고, 바람이 나무 곁을 스치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는 묘지에서는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그보다 아빠가 더 무서웠다.
컴퓨터를 사달라고 떼쓰던 일은 그날로 끝났다.
컴퓨터 이야기는 입에도 올리지 않았고, 학원도 그만두었다.
세월이 지나, 나를 그렇게 아껴 주던 할머니는 바로 그 산 밑의 밭에 유골을 뿌려달라고 유언하셨다.
새벽녘 해가 뜨기도 전에 밭에 나가 농사를 짓던 할머니는, 결국 평생 친구였던 흙으로 돌아가셨다.
지나간 일들을 떠올려 보니, 그때 나는 참 어렸다.
어둠이 무서웠고,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웠고, 무엇보다 폭력적인 아빠가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이겨냈다. 어둠을 이겨내고, 공포를 견뎌내며, 끝끝내 살아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부모가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만 있어도 아이는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가장 무서웠던 장소가 훗날 가장 따뜻한 추억이 깃든 곳이 되었듯이, 삶은 그렇게 계속 살아내고, 또 살아볼 일이다.
삼다 수업을 하는 동안 썼던, 책에는 실리지 않는
글을 다듬었습니다.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작가의 글을 읽다가 무덤덤하게
아빠에 관한 아직도 화해 안 된 어릴 적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어른이 되니 부모 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잘한 것과 못한 것을 분리할 줄 알게 된다며 담백하게 써 내려간 글을 보고 저도 이제는 치유된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