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감색 플레어 치마에 흰색 블라우스와 넥타이 재킷까지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교복을 처음 입게 된 날은
엄마가 돌아가신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후였다.
가난도 가난이지만 자린고비였던 아버지는 교복을 사주지 않았다. 동네에 같은 학교를 졸업해서 3년 내내 입은 언니의 반지르르하고 군데군데 낡은 교복 치마와 재킷을 물려받아 입고 입학을 해야 했다. 시골은 학생들이 적어서 한 반 밖에 없어 초1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9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아침마다 모두 같은 버스를 탄다. 내 교복만 보는 것 같아 창피했다. 다른 애들은 새로 맞춰 정장을 갖춰 입은 듯 세련되고 예쁜데 내 교복만 후줄근했다. 그것이 고등학교 3년 내내 소극적인 고교 시절을 보내게 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새것 같은 교복을 입고 강당에 서서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 6학년 때부터 좋아했던 남자아이에게 좋아한다고 빳빳하게 잘 다린 교복을 입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아빠는 수학여행비도 주지 않아서 나는 못 간다고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 당시 체육 선생님이 여자분이셨는데 조용히 강당으로 부르더니 수학여행비를 학교에서 지원해 줄 테니 가라고 했다. 2박 3일이었다.
수학여행을 가서 좋았지만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어야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는 아빠는 마땅히 외출할 새 옷도 사주지 않았기에 수학여행에 입고 갈 옷은 당연히 없었다. 친척 집에 가서 노란 후드티와 청바지를 빌렸다. 수학여행 내내 그 옷만 입었다. 빌린 옷이 어색하고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수학여행비도 학교에서 내주고 여행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모님께 드릴 선물과 기념품을 사는 아이들 속에 난 여분의 용돈도 없어 내 마음은 한없이 초라했다. 여행이 싫었다. 집에서 아프다고 학교에 애초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한참 섬세한 돌봄이 필요한 고교시절 엄마의 죽음 뒤에 남겨진 원치 않던 홀로서기, 내게 큰 결핍을 가져다주었다. 가난은 수치심도 불러왔다. 친구들이 내게 말을 건네도 다가가지 못했다. 추억하기에 아름다운 고교시절이 없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다행히도 여름 교복 하복은 물려 입지 않아 새 교복을 사 입었는데 흰색 반팔 블라우스와 감색 체크 플레어스커트를 입을 때는 참 기뻤다. 지금은 모든 게 머나먼 일이 되었고 어른이 된 나는 그때 입어보지 못한 옷을 이따금 사 입으며 환희에 젖는다. 그럼에도 그때를 기억해 보는 건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건 굳세어라 금순이와 같은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 등장하는 안진진의 엄마와 이모 그 둘의 삶을 따라가 보면 안진진 엄마는 억척스럽고 이모는 우아하고 아름답다. 쌍둥이지만 결혼 후 삶의 환경이 달라지면서 외모도 변한다. 하지만 이모의 풍족했던 삶이 인생의 여정을 끝까지 끌고 가진 못했다. 각자의 몫, 삶에서 견뎌내야 하는 것은 빈부를 떠나서 짊어질 무게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 인생인가 보다.
『나,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 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말이야. 어려서도 평탄했고, 자라서도 평탄했으며,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욱 평탄해서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 나는 늘 지루했어. 너희 엄마는 평생 바빴지.
새벽부터 저녁까지 돈도 벌어야 하고, 무능한 남편과 싸움도 해야 하고, 말 안 듣고 내빼는 자식들 찾아다니며 두들겨 패기도 해야 했고, 언제나 바람이
씽씽 일도록 바쁘게 살아야 했지.
그런 언니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결국 가난을 헤쳐나가던 삶과는 다르게 풍족하고 평온했던 삶을 비관한 그녀의 모순을 보면서 어린 시절 결핍이 지금 내 삶을 헤쳐나갈 수 있는 작은 디딤돌이 되지 않았을까, 회상한다.
가정의 달이다. 인간은 흔히들 던져진 존재라고 한다. 삶의 외향적인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어느 만큼 바꿀 수 있고, 흉내 내며 살 수도 있다.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을 담아낼까? 내 인생이 저물어갈수록 내적인 것의 모든 풍요로움이 외적인 모든 것을 품고도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