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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각로 강성길 Dec 11. 2017

사라지기 전에 경험해야 할 80년대 마지막 목욕탕

성북구 길음동 ‘제일 목욕탕’

경험해야 할 80년대 마지막 목욕탕


우리가 사는 주변에 80년대(응답하라) 생활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곳을 우연히 들렸다면 그것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더군다나 같은 시대의 흔적(황혼의 검객)을 연이어 경험했다면 슬플까? 기쁠까?


나는 몹시 반가웠다. 내가 사는 동네에 세월이 온전히 멈춘 곳이 있다니 반갑고 신기했다. 한편으로 몹시 불안했다. 그 존재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동안 신경질적인 송곳 반응을 보여 온 재개발의 영향으로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은 성북구 길음 뉴타운, 뉴타운 지구지정이 2002년이므로 일반적인 지구지정이 되기 위한 준비기간 포함하면 이 곳은 80년대 초반부터 뉴 타운 재개발을 하기 위하여 수많은 시간과 주민의 마음고생이 컸던 지역이다.

목욕탕 입구

지금은 대부분 개발이 완료되어 번듯한 아파트로 자리 잡았지만 말 못 할 사정으로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큰 신장로(동소문로) 부근은 80년대 모습에서도 오히려 더 후퇴한 모습을 하고 있다. 30년 전부터 재개발된다는 이상한 논리에 주민조차 수리하거나 돈을 쓰기에 꺼려하는 재개발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 당분간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허름하고 좁은 골목(자전거 1대 정도 간신히 지나가는 골목) 길에 목욕탕이 있음을 알리는 길거리 입간판이 서있다.  제일 목욕탕, 그동안 수없이 다니면서 내가 저 목욕탕 길거리 입간판을 왜 보지 못했을까 할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다. 그곳에 저런 비좁은 골목에 목욕탕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아침을 먹고 서울 둘레길 봉사 아카데미 활동을 하기 위해 지하철 3호선 구파발 역에서 내렸다. 서어나무 군락 등 자연 숲이 비교적 잘 보존된 행봉산을 지나 서오릉 구석구석을 살펴보기까지 무려 5시간 정도 둘레길 활동을 한 후 오는 길이라 온 몸이 특히 다리가 목욕탕을 너무나 갈망했다. 그동안 눈에 전혀 띄지 않았던 ‘제일 목욕탕’ 입간판까지 찾아냈으니 말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수요일은 목욕탕 휴무이므로 오늘이 수요일이라 손님(손님들은 수요일은 쉰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평소보다 더 없다는 사실을 80 정도 되어 보이는 주인인 듯한 어르신이 혼자 하는 말을 들었다. 형식은 혼자 말이지만 목욕탕 손님이 나 혼자밖에 없으므로 중얼거리는 형식을 통하여 알려주는 것이었다. 


목욕료 4천 원, 이발료 5천 원, 종이에 써 붙인 가격이다. 요금을 내고 커튼을 살짝 제치고 들어가면 남탕이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서울에 이런 목욕탕이 있나 두리번거리면서 80년대 ‘응답하라’ 드라마 세트장인가 의심할 정도였다. 옷을 벗으면서 살짝 느낀 한기가 엄연한 현실이라고 일깨워주었다. 목욕탕 안에도 혼자였다. 샤워를 하기 위해 수도꼭지를 보니 찬물 뜨거운 물 조정하는 기능도 없고 틀고 잠그는 기능만 있었다. 처음에는 혼란스럽지만 몇 번 사용하다 보니 나름 간편하고 괜찮았다. 샤워 후 앙증맞은 탕 안에 혼자 들어가 있으면 온탕이 아니라 타임머신으로 변해 나를 80년대 사람으로 되돌려 놓았다. 사는 것은 지금보다 어렵고 불편해도 마음이 평온했던 80년대 아날로그 시대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80년대 타일에 세월이 고스란히 베인 흔적이 또한 그렇고 익숙하지 않은 탕 내 풍경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따듯해진다. 모처럼 경험하는 익숙했던 옛 목욕 추억이 수증기와 같이 아롱거린다. 앞으로 얼마 안 있으면 사라질 풍경이기에 더욱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이런 생각으로 목욕을 마치자 지금의 이 모습을 잘 간직할 수 없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기 시작했다. 탈의실 모습이라도 없어지기 전에 간직하고자 여기저기 핸드폰을 맞추지만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까지 담기에는 너무나  미흡했다. 이 목욕탕이 잘 보존되고 운영되어 서울의 풍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너무나 감상적인 개인적인 생각 일까?  의구심도 들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산업화 시대(80년대)의 한 단면을 몸소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존 가치가 있다고 본다.

https://brunch.co.kr/@gilliga/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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