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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각로 강성길 Mar 20.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의 소소한 이야기

자원봉사자 유니폼 수령 등 이야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를 신청한 이후, 동계올림픽 개막이 임박했음을 느끼는 사건은 의외의 일상에서 일어났다.  자주 확인해 보지 않아서 사소한 낭패를 겪은 다음에서야 비로소 요즘에는 가끔 들어가 보는 것이 포털 메일이다.  


사전에 자원봉사 유니폼을 받아갈 수 있다는 메일 한통이 있었다. 다행히도 신청 기간이 하루밖에 지나지 않아 궁금함과 들뜬 마음으로 메일을 열어볼 수 있었다. 전국 각 지역 별로 안배하여 운행 버스를 배차하였다. 내용을 확인하고 바로 자원봉사 사이트에 들어가 신청하려고 보니 이미 신청 접수가 만료되었다. 


알아본 즉 신청기간에 관계없이 신청 선착순이므로 신청 시작과 거의 동시에 전 좌석이 매진되었다. 일부 지방 1~2 곳 정도만 신청할 수 있었다. 참고 안내 내용에는 봉사 시작일에는 혼잡이 예상되오니 사전에 유니폼을 수령했으면 하는 행간의 의미를 감지할 수 있었다. 


4~5일 지난 뒤 나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월요일 정도면 사전에 유니폼을 수령하는 봉사자가 적을 것으로 예상하고 평창의 유니폼 수령을 위한 당일 여행을 시작하였다. 봉사자 확인증과 신분증을 제시하면 버스 요금도 활인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였다. 


그 날은 공교롭게도 국립국악원에서 회원들에게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성공기원 기념 공연인 '종묘제레악' 전석 무료 초청 및 나눔 행사를 선착순으로 하는 날이기도 하였다. 동서울버스터미널로 가는 내내 온 신경은 핸드폰 국악원 예매 클릭에 집중하고 있었다. 예매 시각인 정각 10시에 클릭하기 시작하여 예매 마지막 완료를 누르는 순간, 아주 참담한 결과가 나왔다. 대기 신청자 명단에 있었다. 


집에서 출발 당시, 들뜬 기분은 조금 훼손되었으나 터미널에서 자원봉사자에게 요금 할인과 유니폼을 수령한 평창에서 내 모습을 떠 올리며 기분은 바로 원상 복구되었다.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평창 가는 길은 그렇게 정겹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아마도 자신이 있는 위치 내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밖 또는 세상이 이렇게 다르게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행길이라 바로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횡계 시외버스 공영 터미널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동계올림픽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갈아타고 UAC(유니폼 배부 및 메인 등록 센터)로 갔다.  UAC 주변은 승용차와 버스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고 출입구 주변은 자원봉사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동안 살아온 경험과 눈치로 재빠르게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쪽으로 뛰다시피 하여 무리 끝자락에 섰다. 


그리고 나서야 옆에 있는 사람에게 여기가 유니폼 수령 등록 줄이 맞느냐 여부를 물어보았다.  그들도 나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눈치껏 서있지만 맞는 것 같다며 애매한 대답만 하였다. 버스 밖이 '이렇게 매섭게 춥구나' 느낀 것은 그때였다. 시간은 더디 가고 줄도 줄어들지도 않는 것과는 반비례하여 평창의 추위는 눈물 콧물까지 쏙 빼내는 살인적인 추위로 나의 체온을 빠르게 떨어트리고 있었다. 사전 유니폼 수령은 신의 최악수였다. 남들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이곳에 서있는 것일 게다. 


동사 1보 직전에 UAC 안에 들어가니 삶과 죽음, 지옥과 천당은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언제나 늘 함께 있었다. UAC 문 안 삶은 천당이었다. 문 밖 지옥뿐만 아니라 천당에도 웬 사람들이 그리 바글바글한지, 평창 아니 세상 어느 곳도 녹녹한 곳은 없어 보였다. 


처음으로 받아본 AD카드에 평창 동계올림픽에 있어서 나의 신분은 드러났다. 그 내용을 어렴풋이 알기에는 아직도 두세 시간은  지나야 했다.  AD카드를 자랑스럽게 목에 걸고 들어선 곳은 유니폼을 수령하는 파트였다.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앞에 간 자원봉사자가 지체 없이 번호표를 뽐는다. 입구의 줄 서기와 마찬가지로 무슨 상황인지 모르지만 잽싸게 따라 한다. 번호는 700번 중반이었다. 

이제야 정신 차리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 돌아가는 흐름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유니폼 피팅 대기였던 것이다. 나의 순서까지는 250번 정도 차이가 났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이 흘러 유니폼 배부 운영 마감 시간인 오후 8시를 걱정하는 대기자 수는 늘어만 갔다. 


시간이 가면서 피팅 후 사이즈를 기재한 대로 유니폼을 수령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간이 절차로 본인의 사이즈에 확신이 있는 대기자는 피팅을 생략하고 순번과 관계없이 유니폼을 수령하는 간이 절차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한번 받는 유니폼인데 피팅 후 수령하기로 마음먹고 대기하는 중에 옆에 대기자가 내 AD카드를 보면서 자기 것과 다르다고 한다. 그 말에 다른 봉사자가 AD카드 내용은 색깔과 숫자로 구분되는데 그것이 바로 봉사 영역과 임무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 당시는 잘 몰랐지만 나의 자원봉사자 신분은 프레스 센터와 경기장 그리고 선수촌까지 출입이 가능한 비교적 패스 기능이 많은 AD카드였던 것이다.  


눈치 빠른 봉사자는 간이 절차로 들어간 봉사자의 대기 번호를 받아 자신의 번호와 견주어 수시로 교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멍청하게 피팅 순서만 애타게 그리고 융통성 없이 기다고 있는 와중에 봉사자 한 분이 외국인 봉사자에게 50번 정도 빠른 순번을 주자 그 외국인 봉사자는 자기는 그냥 순번에 따라 피팅을 하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그 번호표를 주었다. 얼떨결에 '땡큐'하면서 받아보니 나의 순번보다 130번 정도 빠른 순번이었다.  


이 행운은 유니폼을 수령하고 마지막 기념 선물인 손목시계 수령을 누락시키는 작은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나와 순서를 지키겠다고 하는 외국인과 차이는 무엇일까? 아마도 간이 절차에 의한 순번을 담당자가 받아 폐기했더라면 나머지 대기자에게 골고루 순번의 혜택이 돌아가지만 간이 절차 순번을 후순위 대기자가 사용하면 순번 차이(130) 만큼 많은 대기자가 순번의 혜택이 왜곡되는 것이리라.  이런 생각이 서울로 돌아오는 포근한 버스 안에서 불현듯 떠 올라 그렇잖아도 상기된 얼굴이 더 달아올랐다.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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