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임산부의 일기] 긴 악몽

"여보 나 여기 이렇게 있으면 안돼!!!"

by 난생

토요일이었다.
병원 입원실은 햇살이 잘 들었고
아침인 것 같았다.

내 옆침대나
그 옆 옆 침대나
다들 퇴실을 준비하는 듯 옷가지와 입원준비물을
가방이 싸느라 분주했다.

'주말이라 병원 쉬어서 다들 집에 가는건가...?'

그때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이거 챙길까 버릴까?"

"아, 그거? 버리고 가자 그냥"

당연하게 퇴원준비를 하는 남편 앞에서
나 이렇게 집에가도 되는건가...
의사선생님 허락이 떨어진건가? 싶었다.

그래도 집에 간다는 생각에
집 냄새가 너무 그리워서,
또 큰 아이와 함께 집에 있을 생각에
모든 생각은 멈추고 신나게 짐을 쌌다.

집에 돌아오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집 냄새가 났다.

큰아이는 내게 "엄마~~~"하고 뛰어오며
와락 안겼다.

병원에서 입던 내의를 새걸로 갈아입고
티비를 틀고 큰 아이를 끌어안고
침대에서 같이 만화를 봤다.

완벽하고 행복한 토요일이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외출복으로 갈아입느라
딸랑딸랑 벨트 버클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어디 가?"
"나 ㅇㅇ회사(전 직장:주말도 없이 밤샘근무 밥먹듯 하던곳) 가봐야해"
"뭐? 지금 이 타이밍에? 지금 토요일이야! 가서 언제오는데?"
"응...아마 월요일 밤에나 퇴근하고 오지 않을까 싶어 일이 많거든"
"여보 근데 당신 이제 거기 안다니잖아. 갑자기 왜 거길 가서 일한다는거야?"
"선배가 일이 많아서 도와주기로 했어. 그리고 당신 병원비도 벌어야하니 겸사겸사..."

병원비 소리에 갑자기 고개가 끄덕여지며
말을 할 수 없었다.

"여보... 그런데 지금 집에 나 혼자 있기 너무 무서워...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

그 말과 함께 아무 걱정없이 퇴원했던
내 몸의 객관적 컨디션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남편 없이 아이와 집에서 단둘이...
일단, 지금 양수가 새고있어서
항생제 수액도 맞아야 하는데
그러고보니 집이라 항생제 수액바늘 꽂아줄
간호사가 없다.

생각해보니,
하루 세 번 먹어야하는 먹는 항생제 처방도 없이
퇴원해서 오늘 나는 항생제 없이
무방비하게 하루를 보냈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가 훌쩍 넘은 시간.

'점심 항생제를 안먹어버렸네..,
내성 생기면 큰일인데...'

"여보, 나 지금 집에 있으면 안돼!
병원에서 왜 퇴원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나 양수감염 예방해야해서 항생제 잘 먹어야 하잖아!!
벌써 늦어서 빨리 병원 가야해.
그리고 저녁에는 수액으로 바로 맞는 항생제도 있어서
간호사 도움 없이는 안전할 수가 없다구...
여보 그럼 그냥 나 병원에 데려다만 줘
그리고 회사 가... 그 정도 시간은 괜찮지?
위험해질수도 있어, 난 지금 여기 있으면 안된다구..."

남편은 회사 출근과
병원에 데려다줄 시간을 가늠해보며
병원갈 준비를 서두르라고 말했다.

다시 병원에 갈 수 있다는 안도감을 느낌과 동시에
다시 큰 아이가 할머니 댁에 맡겨지고
우리 가족이 또 뿔뿔이 흩어져
견뎌야 할 시간을 생각하니 막막했다.

그런 마음으로 내의를 갈아입으려고 몸을 움직이는데
이상하게 허리가 너무 아팠다.
이상하다.., 집에서 누워만 있었는데 무리를 했나..
왜이러지.. 왜이러지...

몸의 감각에 집중해보니
내 몸은 경사진 병원 침대에 구부정하게 누워있었다.
감긴 눈꺼풀에 비춰지는 명암도
밝은 토요일 오후가 아니라
어두운 병실이었다.

'집에 갔던게 아니었구나..'

처음부터 난 집에 간 적이 없었고
그냥 또 꿈을 꾼거였다.

꿈에서라도 안아본 5살배기 큰 아이,
오랜만에 맡아본 우리집 냄새에 감사해야하는걸까?
이건 악몽일까? 아니면 좋은꿈?

...

어제부터 항생제로 인한 설사가 시작됐다.

그동안 철분제 먹느라 변비로 고생했는데
고질적이던 변비가 무색하게
하루만에 장이 다 비워졌다.

3가지 항생제를 투여한지 만 3일이 넘어가자
어제 하루동안 화장실만 네 번 갔다.

먹는 족족 바로 배출되는 느낌이라
식사 시간에 조금 긴장이 되기 시작했고
면회온 남편에게 요플레를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어제는 다행히
냉장고에 미리 사둔 요플레가
딱 하나 남아있어서 빈 속에 힘들어서 먹었더니
속이 금방 편해졌다.

살기 위해 먹는 요플레가 될 것 같다.

항생제 무섭다는걸 요즘 실감하고 있다.

양수감염 예방을 위해 지금 꼭 필요한 약이지만
약을 쓰는만큼 내 몸의 기능이 무력해져가는
그런 이중적인 약이라는 생각...

어제 의사 회진때
앞으로 구정 지나서까지 버텨보자고 했는데
설사와의 싸움이 시작될 것 같다.

간호사에게 살짝 물어봤다.

"제가...아무래도 항생제 때문인지 설사를 하는데요,
보통 며칠 이러다 말겠죠?"

"설사 심하세요? 변의 형체는 어느정도 남아 있어요? 아무래도 항생제 때문에 설사를 하실 수 있는데 너무 힘들면 말해주세요."

"오늘 하루종일 속이 비워져서 그런지 속이 너무 쓰려요..."

"아...일단 선생님께 말씀드려놓을게요. 그런데 임신중이시라 위장약 같은건 쉽게 쓰지 않아서.. 다른 산모님들도 아기한테 약이 걱정된다며 웬만하면 견뎌보시는 쪽으로 하시더라구요..."

"유산균 잘 챙겨먹으면 며칠 이러다 좋아지겠죠?"

"유산균도 도움 될거예요... 그런데 안그러신 분도 계세요..;; 항생제 오래 달고 계시면서 아기 낳을 때까지 설사하시던 산모님들도 계셨거든요"

간호사와 짧은 대화 후
그냥 내가 설사에 익숙해지는 편이 좋겠구나 싶었다.

극복할 수 없다면 적응하기.

설사해서 좋은점?...

배가 가벼워져서 태동이 잘 느껴지네!
배가 가벼워져서 배도 덜 뭉치는 느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