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생 Sep 26. 2022

유쾌한 가족의 대화 9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실에 두툼한 토퍼를 깔고 아이와 함께 자고 일어났다. 거실이라 베란다 창을 통해 선선한 가을 공기가 밤새 스며들어 와서 자면서 조금 추웠다. 


그래도, 양 옆에 부들부들한 가을용 내복을 입고 잠들어있는 두 아이 덕분에 나는 밤새도록 따뜻하고 포근했다. 좀 추워진다 싶으면 옆에 있는 아이들을 내 옆으로 끌어 모아 찰싹 달라 붙어 이불을 같이 덮었다. 섬유유연제 향이 나는 새 내복에, 저녁 샤워를 마치고 바로 잠든 아이들은 그 어떤 냄새보다 좋은 향기를 품고 있었다. 두 아이들의 체온과, 유일하게 좋은 그 향기 속에 파묻혀서 나는 금세 따뜻해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밤새 느낀 그 고마움을 아이들에게 전했다.


"우리 오늘 같이 자는 날이었지~? 엄마는 혜성이랑 태양이랑 같이 잤더니 밤새도록 하나도 안 춥더라. 이제 가을이라 밤 공기가 제법 쌀쌀한데도. 밤새도록 부들부들하고 향긋한 너희들을 꼭 끌어안고 자니까 너무 포근했어. 덕분에 엄마가 푹 잠들었네. 너희들은 꼭 포근한 구름 같아. 정말 사랑해"


그러고나서 아침을 차려 주고, 나는 곧바로 아침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아이는 아침 밥도 안먹고 갑자기 자기 책상 앞에 앉아서 색테이프를 종이에 붙이기 시작했다.

 

"혜성아, 혹시 오래 걸려? 엄마 아침밥 다 차려놨는데. 이건 언제쯤 끝날 것 같아?"


혜성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아.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 줘. 이거 다 끝나야 나 밥 먹을거야"


어린이집 등원 준비에 늦을까봐 조금 조바심이 났지만, 아이가 갑자기 아침부터 저러는 이유를 모르겠어서 일단은 알겠다고 했다. 


"그럼 엄마랑 꼭 약속해. 이거 다 끝나면 밥 먹는거 잊어버리지 말고 식탁 앞으로 바로 가야해~! 엄마 샤워하러 이제 욕실로 들어갈거라서 계속 밥 먹으라고 이야기해 줄 수가 없거든. 엄마랑 손가락 걸고 약속! 이거 다 끝나면 밥 먹으러 식탁 앞에 앉는 거 안 잊어버리기!"


혜성 "응, 알겠어어~"



그리고 한창 샤워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빼꼼 문을 열고 하얀 봉투를 건넸다. 가까이서 보니 A4 용지를 길게 접어서 테이프로 붙인 것이었다. 



혜성 "엄마, 이거 빨리 먹고(?) 싶으면 빨리 샤워하고 나와서 봐"


그래도 나는 잘 알아 들었다. 


'훗, 빨리 '보고' 싶으면 이겠지. 나랑 아침 먹자고 약속한 게 어지간히 신경 쓰이나보다.'


그리고 나가서 봉투를 펼쳐봤다. 그 속에는 사람 모양을 한 테이프 조각들이 붙어 있었다.


"엇. 이거 사람 아니야? 머리, 가슴, 배, 다리 맞지? 근데 머리, 가슴, 배는 곤충 아니야? 하하핳" 


혜성 "어, 맞아! 내가 엄마 만든거야. 엄마 사랑한다고 말하는거야!"


"그러게~ 여기 하트도 보이네? 정말 고마워 우리 혜성이~엄마도 사랑해~"


남편 "여보가 샤워하느라 못 들어서 그런데, 혜성이가 저거 만들면서 한 말까지 들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뭐라고 했는데?"


남편 "글쎄 그러더라. '나는 그림을 잘 못 그리고 글씨도 잘 몰라서 내가 잘하는 만들기로 엄마를 표현한거야' ' 너무 기특하지 않아?"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저절로 밝아진다. 불과 전날 밤 카드값 걱정을 하다가 잠든 현실에 찌든 엄마 아빠라도 참 쉽게 밝아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 아이들은 마치 어둠을 밝히는 옛날 전구 같달까. 켜두면 그 주위가 따뜻하게 밝아지는.

매거진의 이전글 유쾌한 가족의 대화 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