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비우고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불행의 주된 원인은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다."
"The primary cause of unhappiness is never the situation but your thoughts about it."
에크하르트 톨레 (Eckhart Tolle)
치료를 마치고 다시 회사로 복귀했을 때, 내 몸은 예전의 몸이 아니었다. 체력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대상포진과 복막염과 같은 후유증으로 병원을 들락날락했고, 입원도 자주 했다. 한 때 열정을 쏟아부었던 일과 직장 생활은 몸이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마음도 함께 흔들렸다. 이렇게 더는 살 수 없다. 결심이 필요했다.
사찰에 들어가 고요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볼까? 그동안 한 번도 진지하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살아남기 위한 치료에만 애썼을 뿐. 사찰에서 한 달을 보내며 진정한 쉼을 가져 보기로 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을 하고, 숲을 걷고, 책을 읽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그런 나를 며칠 지켜보던 큰 스님은 나에게 침묵하며 그 저 멍하니 일주일 있어보라 권했다. 예불도 책도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멍하니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라니, 불멍처럼 자연멍을 권한 것이다.
'늘 무언가를 해야만 의미가 있다'는 강박 속에서 움직였던 나는 '하지 않음'으로써, 그저 존재하는 것만을 도 충분하다는 새로운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억지로 새벽에 깨어나려 애쓰지 않았고, 가져간 책들은 모두 차에 넣어 두었으며 숲 속에 앉아 사찰에 오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처음으로 '쉼'을 경험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이 떠올랐다. "불행의 원인은 상황이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라는 말. 내 몸이 약해진 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찰에서의 시간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내 생황에 대한 내 생각을 보는 시간이었다.
숲 속에서의 고요함 속에 열띤 토론을 시작했던 나와 나의 내면 아이. 지금 약해진 내 몸은 결코 나를 괴롭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저 나의 두려움이었고, 그 두려운 생각이 나를 무기력의 늪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다.
내 몸은 약하다. 체력의 한계는 여전했지만, 나는 이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강해질 수 없다는 불안도 더 이상 나를 흔들지 않았다. 대신 현재의 내 몸에 맞춰 살아가는 법을 찾기 시작했다. 비로소 진짜 나를 마주한 것이다.
사찰에서 배운 '비움'은 단순한 쉼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우고 다시 채우는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