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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막삼 Dec 08. 2020

자신감도 대여가 되나요?

명품을 두른다고 마음까지 부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전 직장 동료 결혼식 때 있었던 일이다. 다이어트에 성공했던 터라 자신감이 뿜뿜하던 시기였는데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오랜만에 보는 자리니 썩 괜찮게 잘 살고 있는 사람으로 보였으면 했다. 발상의 시작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속으로 나를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 여겼던 것 같다. 예쁘지 않고, 괜찮게 살고 있지 않다고.


결혼은 직장 동료가 하는데 준비는 내가 더 열심히 했다. 한 달 전부터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했고, 결혼식 하루 전 날까지 택배를 받느라 똥줄이 탔었다. 


메이크업샵도 예약했다. 9만 원에 달하는 지출이었는데 메이크업 선생님은 자연스럽지만 화려하고, 수수하지만 세련되게 해 달라는 나의 요청을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셨다. 헤어까지 세팅하고, 삼복더위에 거금을 주고 산 트위드 자켓까지 걸치고 결혼식장으로 갔다. 


아, 가방을 빼먹을 뻔했구나. 렌탈샵에서 명품 가방을 빌렸다. 할인까지 받아가며 오만 얼마에 입생로랑 핸드백을 대여했다. 평소 해 다니는 스타일이 말이 좋아 유니섹스, 스포티, 매니쉬룩이지 그냥 선머슴 같은 편한 옷을 입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핸드백이 있을 리가 없지. 


옷, 구두, 메이크업, 가방까지 완벽했다. 예식장 화장실에서 메이크업을 살짝 손보고 아는 얼굴들이 모여있는 홀로 나섰다. 인사를 나누고, 주변에 흩어져있는 사람들을 훑어봤더니 분명 함께 일했던 동료들인데 나를 못 알아보는 건지 인사가 없었다. 나도 굳이 하지는 않았다.  


신랑 측 자리에 앉아 열심히 박수를 치다가 눈물이 흘러서 연신 닦아내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식이 끝났다. 사진을 찍을까 그냥 밥 먹으러 갈까 고민을 하는 중이었는데 아는 얼굴들이 다가와 내 이름을 불렀다.


"어머 못 알아볼 뻔했어요"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지셨어요"

"아니 왜 이렇게 예뻐지셨지? 연애하세요?"


기대했던 반응이었다. 조금 더 호들갑 떨어주길 바랬지만 만나는 이들마다 오늘 나의 모습을 칭찬해주었다. 그 순간 메이크업샵과 명품가방 대여에 쓴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 한 켠이 체한 것 마냥 꿍했다.


옷은 불편했고, 오랜만에 신은 구두에 발은 붓고, 명품 가방에 스크래치라도 날까 봐 전전긍긍하다 보니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나를 보고 동료들은 아직 다이어트 중이냐고 물었다. 어색하게 웃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분명히 사람들을 만날 때까지만 해도 오늘 하루가 만족스러웠는데 기분이 왜 이렇게 별로일까?


꾸미고 치장하는데 많은 돈을 들였지만 대여비 5만 원에 자신감까지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다. 좋은 옷과 화장으로 겉모습은 번지르르하게 포장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나의 헐벗은 마음까지는 커버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수많은 미디어에서 너는 지금 그대로도 아름답다고 외쳐도 나는 내가 아름답지 않았다. 


나에게 아름다움은 내면보다는 외적인 모습이었고, 내가 이만하면 됐다고 인정하는 것보다 타인의 평가가 중요하다. 상대방의 칭찬과 긍정적인 판단이 나를 단정하는 기준과 잣대다. 그 날은 예쁘다는 말은 못 들었지만 다들 놀랄 만큼 큰 변화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명품을 두른다고 마음까지 부자가 되지는 않았다.명품 가방과 가난한 마음의 괴리가 컸기 때문이겠지.


나는 여전히 타인의 눈길과 관심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고,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SNS 검색 몇 번이면 찾을 수 있는 모두에게 공개된 소셜 라이프를 살고 있지만 내 진짜 마음만큼은 비공개 상태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독립하는 일은 멀고도 험하다. 또한 완벽한 독립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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