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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만총총 Jun 09. 2021

요즘 나는 ‘BTS 불타오르네’를 흥얼거린다

   

평범한 주부인 나는 월요일이 싫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는 유치원에 가 오후 3시에 집에 온다. 그동안 혼자인 시간이다. 자유롭게 눕거나 앉거나 밥 먹거나 못 봤던 영화를 봐도 된다. 온전히 한량처럼 지낼 수 있음에도 월요일이 싫다. 아들과 북적대는 주말이 오히려 더 반갑다. 몸은 힘들지만 내가 잘 살고 있구나 확인되는 시간이랄까? 아이가 어렸을 때는 아들 뒤꽁무니 쫓아다니느라 커피 마실 시간조차 없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너무 많다. 7년 동안 아이 키운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2021년 현재,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나마 가장 잘한 일은 아들을 낳은 것이다. 


결혼 전 직업은 편집 디자이너였지만, 생각만큼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타고난 미적 감각을 가진 그들을 이길 수 없었다. 다시 그 일을 하고 싶진 않다. 어쩌면 이제는 할 수 없는 일이 된 건지 모르겠다. 너무 오래 일을 쉬었다.     


나는 늙었다고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었다. 나 자신을 돌볼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결혼 생활 동안 너무 많은 사건 사고들이 항상 내 주위에 넘쳤고, 주변을 살피느라 나를 온전히 돌볼 틈이 없었다. 요즘 들어 나만의 자유시간이 많아지면서 얼굴을 세세하게 뜯어볼 시간이 많아졌다. 얼굴에 늘어난 주름살과 거친 피부를 보며 늙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려 내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면 늙음에 대해 새삼 뼈저리게 느낀다. 


신체적 노화뿐 아니라 생각도 쇠퇴하고 있다. 도전이 어렵고 포기가 빠르다. 망설이고 주저하며 시간을 허투루 쓰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다. 자꾸 편히 살고 싶다. 신체가 노화되고 생각이 늙어지면서 더 피폐해진다.      

훌훌 털고 뭔가 생산적이고 활동적인 일이 하고 싶어 자격증 공부를 했는데 떨어졌다. 공부머리는 부족하고 엉덩이 힘도 없으니 자격증을 포기했다. 일자리를 찾지만 마땅히 일할 곳을 못 찾겠다. 이제는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걸 잘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결혼 전에는 돈을 벌어야 먹고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남편이 있고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절실함이 없다.

 

남편이 노래방 가서 도우미랑 노는 게 싫어서 이혼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이 여유로운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참고 살면 그만이겠지 하며 눕는다.     


요즘 내 유일한 즐거움은 BTS 유튜브를 보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BTS 동영상을 보고 잠이 들 때는 다시 또 BTS 영상을 보며 잠든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나는 이 지독한 늙음에 무너져 버렸을 것 같다. 방탄을 알고 무엇을 할 건지 실마리가 조금씩 보인다. BTS ‘불타오르네’를 흥얼거리며, 나도 생의 한 번쯤 불타오르고 싶다는 생각의 싹이 트이고 있다. BTS도 이 노래를 만들고 부르면서 더 불타올랐을 것 같다.


 방탄의 불타오르네 가사처럼 지금 이 무기력한 끝판왕의 나쁜 감정들이 모두 불타 버렸으면 좋겠다. 이젠 남편 뒤치다꺼리나 아들 꽁무니 그만 쫓고 내 인생을 살고 싶다. 숨 막히도록 넘치는 사랑받고 싶다. 지금 나는 혼돈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이제 그만 탈탈 털어버리고 나의 40살은 세차게 불타올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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