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Feb 22. 2021

6. 매일 사랑을 표현하다

(태교일기) 내가 엄마가 된다면 - 1편. 사랑

 나는 사랑의 표현에 인색한 집안에서 자랐다. 우리 가족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는 있었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표현도 잘 안 했지만, 그 말을 꺼내면 왠지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만 같았다. 심지어 부모님께 쓰는 편지 속에 사랑한다는 말을 쓰는 것도 부끄럽고, 어색했다. 


 사랑한다는 표현은 왠지 낯간지럽고,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쓰는 말처럼 느껴졌다. 굳이 표현 안 해도 서로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참 무뚝뚝한 사람으로 컸다. 좋고, 행복하고, 사랑하는 기분을 겉으로 드러내면, 그 기분이 달아날 것 같은 사람마냥 감정 표현을 잘 하지 못했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자신의 감정 표현에 거침이 없는 사람이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하하하 아주 큰 소리로 웃어버리고, 박수 소리도 아주 컸다. 주변에서 쳐다볼 것 같아 소리를 낮추라고 얘기하면, 남편은 괜찮다며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사랑 표현 역시 거침없었다.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아주 즐겁고 기쁜 표정으로 하고는 했다. 나는 사랑이라는 표현을 자주하면 그 표현이 지겨워지고,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아 아주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남편은 언제나 자기가 좋은 것은 좋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줄 알았다.


 남편과의 만남이 익숙해지고, 결혼을 하면서 나도 어느새 ‘사랑’을 매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표현이 지겨워지거나,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았던 나의 우려는 그저 우려일 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더 깊어졌고,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에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사랑한다는 말은 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았다.


 남편의 사랑은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기숙사, 하숙, 자취 생활을 하며 홀로 지내온 내 젊은 날의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한 사람의 따뜻함으로 스르르 눈 녹듯 녹아버렸다. 외로움에 들쑥날쑥 변덕 같던 내 마음도 안정을 찾고 고요해졌다. 내가 사랑을 받고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매일 현실로 다가왔고, 이러한 현실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남편의 사랑은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어려서부터 곱슬머리, 안경 쓴 얼굴, 매끄럽지 못한 피부 등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머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거나, 안경을 쓰고 밖에 나갔거나, 화장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날에는 자신감마저도 떨어졌다. 그런 날에는 나를 감추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피했다. 하지만 남편은 오히려 곱슬머리를 더 좋아해 주고, 안경 쓴 내 모습을 더 좋아해주고, 화장하지 않은 모습을 더 좋아해 주었다.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었다. 어릴 때부터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작은 상처들이 모두 치유되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내 겉모습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나와 남편은 아이에게도 우리의 사랑을 매일 표현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매일 아이를 향해 “사랑해.”라고 얘기해 주었다.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는 엄마와 아빠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의아해 하는듯 했지만, 자신이 사랑 받고 있음은 느끼는 것 같았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아이의 얼굴 한 가득 미소가 피어 올랐다.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할수록, 아이에 대한 내 사랑은 점점 깊어졌다. 사랑에는 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아이가 태어난 초기에 사랑과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는 생후 6~8개월부터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과 애착을 형성하기 시작하는데, 생후 2년까지가 가장 중요한 시기다. 이 때 형성되는 애착관계는 아이의 정서, 사회성, 지적 발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엄마로부터 긍정적이고 친밀한 유대감을 형성한 아기는 세상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도 쉽게 친해지며,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 두려움 없이 세상을 탐색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애착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요인이 따뜻한 손길과 포옹이다.


 르네 스피츠 박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깨끗한 환경과 충분한 음식을 제공 받았지만, 따뜻한 손길을 받아보지 못한 아기들은 힘도 없고, 반응도 느리며, 정상적인 발육이 일어나지 않았다. 반면 조금 위생적이지는 않아도 매일 안아주고, 이야기를 해주며 사랑을 준 아기들은 건강상태도 양호하고, 이상한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엄마의 품에 꼭 안기는 캥거루 케어를 받은 미숙아들은 케어를 받지 못한 아이들보다 빠르게 회복하고, 안정감을 느낀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손길과 포옹이며, 그 힘은 아이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강력했다. 


 아이가 세상에 적응할 때까지 매일매일 안아주고, 이야기도 해주고, 노래도 불러주면서 내 사랑을 표현하였다. 내 사랑의 표현은 아이의 마음 속에 따뜻함과 사랑을 심어줄 나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안아줄 수 있을 때 마음껏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


 아이가 크고, 독립심을 갖게 되고, 엄마의 품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때부터, 나는 예전만큼 아이를 안아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침에 일어날 때, 학교에 갈 때,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우리는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 순간들이 매우 감사하고, 행복했다. 나와 남편은 매일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으며,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주었다. 사랑을 받은 아이는 밝고, 빛났으며, 얼굴에는 늘 웃음이 가득했다.


 “엄마, 사랑해요.”


 며칠 전 아이가 남긴 쪽지에 쓰여진 한 마디다. 아이가 건네 준 이 쪽지 한 장에 하루 종일 하늘 위를 걷는 기분이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사랑을 표현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까운 듯 속 안에 꼭꼭 담아두기만 했다면 이러한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살았을 것이다.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하니, 내 마음에 사랑이 마를 날이 없다.


*파란색 글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쓴 글입니다.


(Cover Image from Pezibear in Pixabay) 

이전 07화 5. 함께 울고, 함께 웃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