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 일기) 내가 엄마가 된다면 - 1편. 사랑
내가 아이를 대신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아이의 삶이 비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고민했다. 아이의 비바람을 내가 멈춰 줄 수는 없을까, 아니면 혹여 내가 그 비바람을 대신 맞아줄 수는 없을까. 내가 대신해 주면 아이가 스스로 삶을 견디는 방법을 익히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내가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아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내 사랑의 표현이 아이에게 과하지 않을까, 아니면 부족하지 않을까.
아이의 마음과 함께 내 마음도 흔들렸다. 아무 고민 없이 그냥 다 대신해주고 싶은 마음들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아이가 힘들어 지쳐있을 때, 울고 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내가 아이의 인생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일들도 너무나 많았다.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아이가 ‘모소’라는 대나무를 닮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소는 중국에서 자라는 대나무의 한 종류인데 싹을 틔우기 전까지 자신의 성장을 지탱해 줄 깊은 뿌리를 키운다. 뿌리만 키우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싹이 트지 않더라도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 5년 뒤 뿌리로부터 풍부한 영양을 공급받은 모소는 순식간에 성장한다. 6주 안에 10미터 이상 자란다고 하니 그 동안 견딘 시간들이 참으로 대견하게 느껴진다.
대나무는 또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성장하는 동안 마디를 만든다. 시원한 그늘에서 자란 대나무보다 숱한 비바람과 뜨거운 햇볕을 모두 경험한 대나무의 마디가 더 많고 단단하다. 마디는 바람이 불어도 나무가 쉬이 쓰러지지 않게 하며, 더 높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이가 대나무처럼 삶을 지탱하는 깊은 뿌리와 단단한 마디를 닮아 비바람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 힘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랬다.
아이는 크면서 수많은 성장통을 겪었다. 몸이 크느라 아프기도 하고, 마음이 성숙하느라 아프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아이의 아픔을 읽고, 이해해주고, 스스로 극복하길 응원하는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아이는 너무나 아팠다. 열이 나고, 먹으면 토하고,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 며칠간 무리를 하더니 탈이 난 것 같았다. 안쓰러웠다. 병원에 다녀오고, 약을 먹었지만 금방 낫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듯, 아픈 과정을 통해 아이의 몸에 새로운 면역력이 생겨나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 잘 견디고 있다고, 아프고 일어나면 더 건강해질 거라고 이야기하며 아이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났다. 아이는 많은 날을 그렇게 아프고, 견디고, 또 회복하면서 커갔다.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종종 학교 공부를 어려워했다. 새로 배우는 산수 문제, 과학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 끙끙대고는 했다. 가끔 내게 문제를 가져와 잘 모르겠다며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어려운 문제도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아이에게 잘 하고 있다고, 또 잘 할 수 있다며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답을 알려주는 대신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아이와 논의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이는 활짝 웃으며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아이는 다양하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지식을 쌓아갔다. 아이의 뿌리가 깊이깊이 자라났다.
어떤 날은 아이가 집에 들어오자 마자 방에 들어가 운 적이 있었다. 친한 친구와 다투었다고 했다. 친구와 다툰 것도 속상하고, 여전히 친구와 잘 지내고 싶은데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 몰라 또 속상해하고 있었다. 아이를 안아주며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엄마도 그렇게 친한 친구와 다툰 적이 있다고, 그 때 너무 속상했다며. 아이는 자신만 삶에서 그런 아픔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 받았다. 그리고 진심은 어디서나 통하게 되어 있다고 얘기해 주었더니,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르는 듯 했다.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아이는 삶을 배웠고, 또 한 번 성장했다.
아이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순간마다 아이 곁에서 손잡아주고, 안아주고, 때로는 같이 울었다. 아이에게 닥친 어려움은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그 과제를 극복하는 과정 속에는 늘 아이를 이해하고, 격려하는 엄마와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괜찮아. 잘 하고 있어. 다 잘 될 거야.”
나를 위로하듯, 아이를 위로했다. 힘든 것을 꾹꾹 참아내고, 혼자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던 나의 어린 시절을 위로하듯이 아이를 위로했다. 누구나 어려울 수 있다고, 누구나 힘들 수 있다고, 그러니 혼자서만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어깨를 토닥토닥, 등을 토닥토닥 해주었다. 너무나 잘 해내고 있으니 더 힘을 내라고 격려해주었다. 아이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마음 깊이 아이를 안아주었다.
비바람이 잦아들고, 햇살이 아이의 얼굴을 쨍 하고 비추었을 때, 우리는 마주보며 함께 웃었다.
‘잘 견뎌 냈구나. 너무나 잘 했구나.’
아이와 함께 울고, 웃는 시간들이 쌓여갔다. 아이도 성장했고, 나도 성장했다. 나의 사랑은 아이에게 물이 되고, 거름이 되었다. 아이는 웬만한 비바람에는 끄떡하지 않을 뿌리를 깊고 넓게 키웠다. 그리고 삶의 고비고비마다 마디를 단단하고 굵게 만들어갔다. 어느덧 아이는 대나무를 닮아 있었다. 곧은 성품과 푸르른 청청함까지 닮았다.
이제 아이는 나의 아픔도 읽고, 공감하고, 응원해주는 둘도 없는 친구다. 아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힘이 된다. 아이가 “엄마, 잘 할 수 있어요. 다 잘 될 거에요.”라고 이야기하면 정말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 보다 아이가 내게 해주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고맙고, 행복하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파란색 글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쓴 글입니다.
(Cover Image from Pexels in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