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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21. 2021

3.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선물하다.

(태교일기) 내가 엄마가 된다면 - 1편. 사랑

 바람이 세찬 겨울이었다.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던 친구가 임신준비 관련해서 해 줄 이야기가 있다며 한 번 보자고 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이야기를 해준다는 친구가 고마워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함께 친구를 찾아갔다.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날 처음으로 ‘자연출산’을 접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내게 출산이란 ‘아이를 낳는 행위’에 불과했고, 산부인과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 전해들은 출산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새로웠으며,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을 좋아하던 우리 부부는 오랜 고민 없이, 아이를 갖게 되면 꼭 자연출산을 하리라 다짐했다.


 자연출산은 말 그대로 아무런 의료적 개입 없이 자연스럽게 출산하는 것을 의미했다. 병원이 생기기 이전 우리의 할머니 세대들이 아이를 낳았던 방식처럼 진통을 견뎌내고, 아이가 스스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산모가 가장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산모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관장, 제모, 잦은 내진, 회음부 절개 등의 과정 없이, 촉진제나 진통제 등의 주사 없이 낳는 것이다. 


 출산 후에 아기는 바로 포근한 엄마 품에 안기며, 초유를 먹는다. 탯줄은 모든 피와 영양분이 아기에게 전달된 후 자른다. 신생아실도 없다. 아이는 출산한 순간부터 별 이상이 없는 한 부모와 계속 함께하게 된다.


 이런 출산의 과정은 내게 너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임신을 하고, 자연출산을 준비하게 되면서 나는 더욱더 자연이 인간에게 준 선물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출산 과정에서 분비되는 엔도르핀과 옥시토신 호르몬은 출산의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주며,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출산의 모든 과정을 견디어 낸 산모는 삶의 과정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되고, 용서의 힘이 생기며, 성취감과 자신감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엄마에게 분비된 호르몬은 아기에게도 전달되는데, 아기 역시 이 사랑의 호르몬을 통해 아주 강력한 사랑의 힘을 느낀다. 또한 편안한 환경 속에서 출산을 경험한 아기들은 잠도 더 잘 자고, 모유도 더 잘 먹는 등 평화로운 아기가 된다.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받을 수 있고, 아기에게도 줄 수 있다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자연출산의 좋은 점을 알고, 결심도 했지만,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아이를 낳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진통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생리통의 10배 이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서 무통주사로 유혹했다. 아프지 않게 나을 수 있는데, 왜 고생하려고 하느냐면서 말이다. 자연출산의 좋은 점을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이미 경험을 해 본 그들 앞에서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다가올 그 고통이 두려웠다. 만일 자연출산센터를 알지 못했더라면, 두려움 앞에 무릎을 꿇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통해 산모가 아기를 낳을 때 마음을 잘 컨트롤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히프노버딩(Hypnobirthing)’이라는 방법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교육하고 있는 자연출산센터를 만나게 되었다. 이 곳에서 교육을 받으며 두려움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엄마인 나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등산을 하기 전에, 마음이 축 처지고, 산에 오르는 것이 생각만으로도 너무 힘겹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정말 산에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고, 가다가 중턱쯤에서 포기하고 내려온다. 반면, 마음이 가뿐하고, 산에 오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의욕이 충만한 날에는, 거뜬히 산 꼭대기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나를 발견한다. 출산에 대한 마음가짐도 이와 같았다.


 아프고,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 있으면, 그 생각은 현실이 된다. 물론 전혀 안 아플 수 없겠지만, 두려움으로 인해 몸은 긴장하게 되고, 아픔은 실제보다 더 많이 아프게 느껴진다. 온 몸의 긴장을 모두 풀고, 내가 겪을 고통이 견딜 만한 아픔이라 생각하면 그 아픔은 견디어지고, 지나가게 된다. 아픔이 밀려오면 그냥 온 몸으로 아픔을 받아드리리라 생각했다. 내 몸을 믿고, 아기를 믿기로 했다. 모든 기다림 끝에 다가 올 생명의 신비, 기쁨과 행복을 상상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이야기해 준 출산의 경험은 나에게 또 다른 용기를 주었다. 자식을 다섯이나 낳은 외할머니에게 아이를 어떻게 낳았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다섯 번 모두 집에서 낳았다고 했다. 게다가 막내 이모를 낳을 때는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혼자 낳았다고 했다. 탯줄도 할머니가 끊었고, 아이는 그냥 나왔다고 했다. 그 때는 다 그랬다고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혼자서 고통을 견뎌야 했을 할머니의 모습이 상상되어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홀로 꿋꿋이 아이를 낳은 할머니가 멋져 보였다. 옛날 우리의 어머니들이 다 겪어 온 일인데 나라고 못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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