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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21. 2021

4. 행복한 밥상의 추억을 만들다.

(태교일기) 내가 엄마가 된다면 - 1편. 사랑

 “밥 먹었어?”

 “뭐 먹었어?”

 엄마는 통화할 때 마다 똑같이 물었다. 집에서 나와 기숙사 생활을 할 때부터 시작해서 결혼을 한 뒤에도 똑같았다. 그 소리가 너무 지겨워 엄마보고 물어볼 것이 그렇게 없느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맨날 비슷비슷하게 먹는 밥을 무슨 보고라도 하듯이 얘기해야 하는 것이 귀찮았다. 


 그래도 엄마는 다음 번 통화에 또 “밥 먹었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는 중요하다고 했다. 어느 순간에라도 딸이 밥을 잘 먹고 다니는지,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엄마에게는 자식들 밥 먹이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런 엄마였기에 엄마는 자식들을 키우는 동안 한끼도 거르지 않고 한결같이 밥상을 차리셨다. 가끔 외식을 한 날도 있었지만, 시골이라 외식할만한 식당도 마땅치 않아 대부분 집에서 밥을 먹었다. 가게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엄마는 불평 한 번 없이 매일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셨다. 아픈 날에도, 힘든 날에도 밥은 꼭 챙긴 후에야 방에 들어가 누우셨다.


 그런데 철이 없던 나는 반찬 투정을 자주 하였다. 왜 아침에 먹었던 국을 저녁에 또 먹느냐고 하질 않나, 고기나 햄 반찬이 없으면 밥을 잘 먹지 않았고, 김치나 나물은 한두 입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엄마는 내가 투정을 부리면 그 때는 “그냥 먹어!” 하셨지만, 다음 식사에는 내가 좋아하는 고기 반찬과 새로운 국을 만들어 주셨다. 


 그렇게 엄마는 자식들의 밥걱정을 혼자 다 짊어지었다. 무슨 밥과 반찬을 해야 밥을 잘 먹을지, 밖에서는 밥을 잘 먹고 다니는지, 혹시나 부실하게 먹는 것은 아닌지 늘 걱정이셨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매 끼니를 챙겨주던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엄마가 안쓰럽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나도 어느새 가족들의 끼니와 건강을 걱정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내게 해 준 것처럼 살 수 없었다. 늦게까지 바깥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또 집안일을 해야 하는 것은 내게 너무 버거웠다. 그래서 가족들의 밥상을 지키기 위한 세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첫번째는 아이에게 건강한 음식에 대해 알려주어 되도록 자연의 음식들을 먹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태어나 6개월이 넘도록 먹은 것도 모유였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가슴이 아플 때도 있었지만, 자연이 준 큰 선물 중 하나인 모유를 포기할 수 없었다. 


 모유는 면역 강화 물질 및 철분이 함유되어 있어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아토피, 당뇨, 비만, 백혈병 등에 걸릴 위험도 낮춰 주는 고마운 자연의 음식이었다. 이렇게 아이가 어릴 때는 모유를 먹이고, 이유식을 직접 만들며 아이 건강의 기반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가 말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건강한 음식이 무엇인지, 그러한 음식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지를 알려주었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도 스스로 건강한 음식들을 찾아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아이는 가끔 친구들이 먹는 것을 보고 와서는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찾고는 했지만, 자주 먹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시골 할머니 집에 가서 직접 캐 보고 따 본 고구마와 옥수수는 자주 찾았고, 손에 흙을 잔뜩 묻히면서도 고구마 캐는 것을 아주 재미있어 했다. 어려서부터 땅과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경험한 아이는 그 고마움도 이해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났다. 그리고 아이는 피자와 햄버거보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좋아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건강한 음식이 무엇인지 이해하며 커준 아이가 너무 고마웠다. 


 두번째는 아침은 꼭 챙겨 먹도록 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릴 적 엄마는 세 끼니 모두 챙겨주셨지만, 그 중에서도 아침을 제일 중하게 여기셨다. 아침이 든든해야 하루가 든든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점심과 저녁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자주 하지 못했지만, 나도 엄마처럼 아이에게 아침은 꼭 챙겨주고 싶었다. 


 전날 챙겨둔 밥과 국을 차려주기도 하고, 토스트나 과일 등으로 간단하게 차리기도 했다. 완벽한 밥상은 못되었어도, 내 나름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아침 식사였다. 아이가 아침을 든든히 먹고 학교에 가는 것을 보면 내 마음도 든든해지는 것 같았다.


 세번째는 주말마다 가족들이 모두 함께 요리를 하고, 밥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밥상에 대한 나의 짐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나누었다. 밥을 짓는 엄마가 아닌 함께 밥을 만들어 먹는 가족의 일원인 엄마가 되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요리 시간이 즐거웠고,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 행복했다.


 우리는 함께 식혜를 만들기도 하고, 딸기잼을 만들기도 했다. 만두를 빚으며, 찹쌀경단을 만들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오물락 조물락 그 작은 손으로 반죽을 하는 아이가 너무나도 예쁘고 기특했다. 매번 훌륭한 요리 솜씨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남편도 언제나 고마웠다. 


 함께 음식을 만들다 보니 먹고 싶은 요리에 대한 아이디어도 퐁퐁 솟아났고, 음식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서로 맛있어 하며 먹었고, 우리의 밥상은 늘 웃음이 가득했다. 아이는 아빠와 엄마의 사랑을 모두 먹고 자라났다.


 나는 사랑과 정성으로 매 끼니를 챙겨주는 엄마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이의 건강을 지켜주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밥을 통한 사랑의 표현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내가 준 사랑은 건강한 음식을 찾고, 아침 식사를 챙겨먹는 아이의 습관이 되었고, 식사의 즐거움을 아는 아이의 행복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잘 먹고, 잘 커주어서 너무 감사하고, 아이와 음식에 얽힌 추억들을 함께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


*파란색 글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쓴 글입니다.


(Cover Image from Karrie Zhu i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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