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일기) 내가 엄마가 된다면 - 1편. 사랑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않은 채, 수많은 벽을 만들고 살아간다. 세대간의 벽, 남녀간의 벽, 부부간의 벽, 부모와 자식간의 벽,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벽, 벽, 벽, 벽. 이미 마음에 지어진 벽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게 한다. 벽은 오해를 쌓고, 그 오해가 낳은 잘못된 이해는 더 높은 벽을 만든다.
나와 아이 사이에는 벽이 없기를 바랬다.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뿐만 아니라, 미안하다는 말, 슬프다는 말, 힘들다는 말, 어렵다는 말도 함께 나누길 바랬다. 힘들 때 혼자 끙끙 앓지 않기를, 두려울 때 혼자 무서워하지 않기를, 슬플 때 혼자 눈물 흘리지 않기를, 화날 때 혼자 그 화를 삭히지 않기를 바랬다.
그래서 나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벽 없이,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길 바랬다. 그리고 이런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와 가치나 생각이 다른 사람은 멀리하며 살아왔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늘 피곤했으며,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부딪히고, 충돌하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 중 누군가 내 생각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면 마음 속에 화가 일어났다. 다짜고짜 왜 그렇게 생각하냐며, 왜 그렇게 행동하냐며 화를 내고는 했다. 삶의 가치나 생각이 다른 사람을 수용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심지어 그냥 그들의 이야기는 아예 듣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마음의 벽을 짓고 살고 있었다.
벽을 허물고 사면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남편을 통해서였다. 남편과의 연애 시절, 나는 불만 사항이 생기면 입을 꼭 다물고 먼 곳을 바라보고는 했다. 무엇이 불만이라고 말을 꺼내기에는 내가 속 좁아 보이고, 자존심도 상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꿀 먹은 벙어리마냥 꽁하게 앉아 있으면, 이내 남편은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내가 울면서 힘겹게 불만을 이야기하면, 남편은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마음에 꽁하고 박혀 있던 것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의 입장과 생각을 듣다 보면 속 좁게 생각했던 내 자신에 대해 반성도 할 수 있었다. 남편과 함께 많은 일들을 겪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의 벽이 무너져 갔다. 그 때 서로간에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면 신뢰가 생긴다는 것을 경험하고, 깨달았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내 마음의 모든 벽을 허물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여전히 벽을 세우고 있다면, 아이와의 사이에서도 나도 모르게 벽을 만들고 있을지 몰랐다. 살아온 방식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지만, 남편을 남편 자체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사랑했듯이, 세상을 향한 내 마음을 활짝 열어보기로 했다. 나의 생각과 다름에 당황하지 않고, 흥분하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인정하기로 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살면서 혹여 아이를 내 가치관대로만 이끌려고 하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는 분명 마음에 벽을 세우는 법을 배울 테니 말이다. 나만 생각하며 살 때는 내 그릇이 작던지, 크던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아이를 생각하며 살려고 보니 내가 스스로라도 그릇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활짝 열었다. 대화를 할 때는 나의 가치관, 고정관념, 편견들을 잠시 접어두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들었다. 상대의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을 때는, 그가 살아온 삶의 배경과 경험을 떠올렸다. 똑같을 수 없음을 인정하면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다 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서로가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와 대화할 때도 항상 마음을 열어두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내가 하는 말에 곧잘 따라오고는 했다. 아이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빠와 엄마의 생각이 무엇인가 하느냐였다. 하지만 아이는 크면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집에서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각종 매체를 접하면서 커갔다.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아이의 말과 행동에 당황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무턱대고 화내지 않았다. 무조건 ‘하지마’, ‘안돼’ 라고 이야기 하기 보다는 아이가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이야기를 해봄으로써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에게 잘못된 말과 행동을 알려주면 아이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마음을 열고 나눈 아이와의 대화는 언제나 나의 걱정과 우려를 불식했다.
마음을 열고 대화하기 위해,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주 대화의 기회를 만들었다. 주기적으로 한 것은 책을 통한 대화였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그림 동화책을 보며 동화 속 주인공들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고, 크면서는 아이가 좋아하는 어린이 소설 혹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탈무드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을 공유했다. 아이가 책 읽기를 싫어할 때는, 책의 한 구절만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책을 통해 느낀 점을 이야기 나누며, 아이의 생각이 어떻게 넓어지고, 어떻게 깊어지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모이면, 식사를 하거나 간식을 먹으면서 소소한 하루의 경험들을 나누었다. 남편과 나는 일하면서 있었던 일을, 아이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때때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주제가 되기도 하고, 주말에 함께 본 영화의 내용이 주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자주, 그리고 많이 대화를 나눌수록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고, 더욱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우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한바탕 웃기도 하고,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힘과 기운을 불어넣어주기도 했다.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언제나 행복했다.
아이는 어느덧 키도, 생각도, 마음도 나보다 더 큰듯한 어른이 되어있다. 나보다 더 속 깊이 생각하는 아이의 말에 깜짝깜짝 놀라고는 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나의 고민을 아이와 상의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슬며시 웃음을 내뱉는다. 아이는 힘들 때 힘들다며, 두려울 때 무섭다며, 슬플 때 울고 싶다며, 화날 때 화가 난다며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그리고 솔직하고, 배려 깊은 대화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만들었다. 마음을 열기를 참 잘했다. 자주, 그리고 많이 대화를 나누기를 참 잘 했다.
*파란색 글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쓴 글입니다.
(Cover Image from Alicja in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