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일기) 내가 엄마가 된다면 - 2편. 내려놓음
아버지는 내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 과학상자 만들기가 너무 재미있어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하지 말라고 하셨다. 학생 수가 몇명 되지 않아 달리기 대회에 나갈 기회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역시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게 몇번 거절을 당하고 난 후부터 공부에 전념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항상 학교 성적을 어떻게 더 잘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았고,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양 살았다.
아버지가 내게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군대를 제대하고 서울의 한 성냥 공장에서 일하던 이야기와 택시 운전자로 지내던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공부하고, 대학 나온 친구들이 양복을 입고 회사 다니던 모습이 부러웠다고 하셨다. 집안 환경이 넉넉하지 못하여 공부를 많이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아쉬움은 자식들은 꼭 공부를 잘 시켜서 성공시키고 싶은 의지가 되었다. 그 의지의 영향으로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진정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어른으로 커버렸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세상에는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해왔는지 답을 찾지 못했다. 공부가 재미있기는 했지만, 공부를 즐기지는 못했다. 공부 자체에 대한 즐거움보다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더 심했던 것 같다.
20대 내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행복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어렸을 적부터 공부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 컸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내가 이루기는 했지만, 그 시점에서 다시 내 꿈을 찾아야 했다.
아이를 갖고 얼마 안되었을 때, 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자신감 있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나도 내게 부족한 것을 아이를 통해 채우려고 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내성적이라 말이 많이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내 의견을 말할 때면 얼굴이 빨개지고는 했다. 이런 내가 싫어 성격을 바꾸고 싶었지만, 쉽게 바뀌어지지 않았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말을 잘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 졌지만, 늘 벽에 부딪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아이는 무조건 자신감 있고, 말 잘하는 사람으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었다. 내가 갖고 싶은 성격이고, 능력이었다. 아이는 어떤 성격, 기질, 능력을 가지고 태어날 지도 모르고, 무엇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욕심 뒤에는 아이가 나처럼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마다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듯 하다.
나의 욕심과 두려움을 내려놓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걱정하지 말자 생각했다. 그리고 설령 아이가 남들이 보기에 보잘것없는 일을 하더라도, 아이가 원하는 일이고, 행복해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라 생각했다.
아이는 스스로 꿈을 설계하였다. 아이가 자신의 삶에 대하여 고민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때,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이에게 무엇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라 하였고, 자신의 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라 하였고, 자신이 하는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라 하였다. 그리고 아이에게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게 해 줌으로써,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주었다.
교사, 의사, 사업가 등 어떤 직업을 갖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들을 함에 있어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있고, 어떤 가치를 만들고, 이루어가는가 하는 점이라 생각했다.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을 스스로 선택하며 커갔다.
그래도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을 때는 내가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탈무드에 ‘자녀를 가르치는 최선의 교육은 자기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자녀가 책을 많이 읽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책을 많이 읽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자녀가 성실하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성실하게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녀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먼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하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 아이는 어느 순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자신의 부모를 바라보게 되고,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
내가 변하지 않고, 여전히 내성적이면서 아이보고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라고 한다면 아이는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당장에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굉장한 인내, 노력, 그리고 용기가 필요했다. 아이에게 모범을 보이고 싶어 이전보다 더 노력했고, 점점 변해가는 내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가 적극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시작한 시도였는데, 하다 보니 아이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자신이 원하는 성격이 있었고,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완성해야 할 내 삶의 조각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내가 내 꿈을 잃은 채 아이를 통해 그 꿈을 이루고자 했다면, 아이도 나도 아쉬움이 남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꿈을 찾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삶과 꿈에 대해 고민해 온 아이는 아주 멋진 꿈을 설계하였다. 그리고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엄마를 보며, 자신의 꿈도 열렬히 사랑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이의 꿈이 반짝반짝 빛난다. 나는 아이의 꿈을 존중하고, 아이가 꿈을 이루는 순간까지 늘 격려하고, 응원할 것이다.
(Cover Image from Jackson David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