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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1. 2024
우리의 입맞춤들이 모여서, 도쿄에서(2)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쿄의 중심부라고 해도 주말 오전의 거리는 한산했다. D의 오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어느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D의 친구는 가깝게 지낸 사람들만 초대해서 작은 파티를 하듯이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일본식 결혼식도, 소위 스몰웨딩에 참석하는 것도 처음이었던 우린,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다.
나비와 꽃 액세서리로 머리를 올리고 파스텔 톤의 드레스를 입고 한껏 꾸민 하객들 사이에서, D와 난 침울해지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멀뚱멀뚱하게 서 있었다. 일본에서는 하객들도 신부 못지않게 멋지고 화려하게 꾸미고 온다는 것을 한국으로 돌아와서야 알았다.
옷이야 어떻든 간에 우린 이 파티를 즐기기로 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장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신부와 신랑이 만든 콩트 영상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오랜만에 롤링페이퍼를 쓰고 테이블을 장식한 꽃들로 꽃다발을 만들면서 아이처럼 좋아했다.
친구의 작은 파티에 흠뻑 빠져들어, 처음 본 사람들과 마주 보면서 웃고 꽃을 만들고 노래를 불렀다. 그들과 함께 웃을 때마다 새로운 시간이 만들어지고 박수를 칠 때마다 그 시간이 합쳐지는 것 같았다. 마른 바닥에 빗방울이 후두두 떨어지며 만들어지는 동심원들이 각자 무늬를 그리다가 맞닿아 큰 원으로 합쳐지는 것처럼.
카를로 로벨리가 시간에 관해 쓴 물리학 책에 매료되어 적어두었던 구절이 있다.
끝없는 결합의 놀이가 우리에게 귀한 기적을 열어주고, 우리를 존재하게 해준다. 우리는 지금 웃을 수 있다. 시간 속에 고요히 스며들어 있는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우리 존재의 짧은 주기의 소중한 순간을 강렬하게 음미하면서.
-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2021, 쌤앤파커스, p.208
오후가 지나고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친구의 흰색 웨딩드레스에 주홍색의 노을 빛깔이 물들었다. 신부와 신랑은 사랑의 맹세를 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따스한 눈길 속에서 씩씩한 행진을 했다.
그러나 내가 과학을 통해 배운 것은 단 하나의 현실 세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은 항상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며, 우리의 눈앞에서 계속 변화하는 존재이다.
- 카를로 로벨리,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2021, 쌤앤파커스, p.214
이 시간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들과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접촉해서 만들어낸, 희박한 확률로 생긴 유일한 시간이다. 그래서 난, 강렬하게 음미하는 모든 시간이 더욱 소중하고 정성을 들이고 싶다. 세상을 낭만적으로 표현한 카를로 로벨리의 문구를 소리 내어 읽고 싶다.
사물과 사건의 차이는 '사물'은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사건'은 한정된 지속 기간을 갖는 것이다. '사물'의 전형은 돌이다. 내일 돌이 어디 있을 것인지 궁금해할 수 있다. 반면 입맞춤은 '사건'이다. 내일 입맞춤이라는 사건이 어디에서 일어날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세상은 돌이 아닌 이런 입맞춤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2021, 쌤앤파커스, p.106
